[나의 인생2막 어촌 이야기] 정근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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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2막 어촌 이야기] 정근영 씨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4.03.1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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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 가수의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히트하면서 관광 명소가 돼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전남 여수. 노랫말처럼 밤바다가 품고 있는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낮 바다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넘실댄다. 물의 도시 여수에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화태도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정근영 씨를 만났다.

남도수산 사장님이 되기까지

학교 졸업 후 조선소 새내기 직원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사회 초년생 정 씨는 고향 여수로 돌아온 이후 어느덧 귀어 4년 차로 자리를 잡으며 남도수산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거제시에 있는 삼성중공업에서 8년을 쉼 없이 근무했다. 기계설계과를 졸업한 이후 입사한 그에게 배 내부 구조물을 관리하는 업무는 크게 어렵지 않았고 적당히 만족스러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조선업이 긴 불황을 겪으면서 계속 조선업계에서 근무를 해도 될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스스로가 추구하는 미래의 비전을 이루고자 귀어를 결심하게 됐다.

“이직을 결심하고 나와 잘 맞는 일이 뭐가 있을지 깊이 고민한 이후로 언론 매체에서 처음으로 귀어귀촌 정보를 접하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귀어 정보를 알아보면서 다양한 어업 중 어떤 업종으로 귀어할지도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정 씨는 심사숙고 끝에 활어 유통업에 종사하는 지인과 함께 여수 어류양식의 일번지인 화태마을을 방문하게 되면서 가두리 어류양식업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귀어를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여의치 않았다. 아무래도 난생처음 접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 정보 없이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당연할 터. 그렇지만 그는 귀어를 꿈꾸고 준비하는 동안 알지 못하는 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길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에 부풀었다.

귀어에 힘을 보탠 화태마을 어촌계

고향으로 돌아와 U턴형 귀어인이 된 정 씨가 여수로 귀어하게 된 이유는 타지에 살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지내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도 있었지만 그가 귀어한 여수 화태마을이 귀어귀촌인에게 열려 있는 마을이다 보니 정보를 얻기가 용이하고 접근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귀어 전 얻은 정보의 대부분은 TV, 유튜브 등 외부 매체를 통해 접했어요. 양식업과 관련한 인맥이 없었기 때문에 현지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화태마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어촌계장님을 만나고, 또 계장님 소개로 다른 어장주분들도 만나서 양식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듣게 됐어요. 그 과정이 제게는 무척 귀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화태마을 첫 방문 이후로 약 3개월간 지속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현지 정보를 얻으며 귀어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 이후로는 귀어귀촌종합센터를 통해 수산업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을 들은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귀어에 대한 정보나 어촌에 접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해당 교육을 꼭 추천한다며 말을 덧붙였다.

마을 정착 초기에는 귀어생활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연령대가 젊은 편에 속하기도 하고 가두리 양식업을 하시는 분들의 성향이 각기 다르기에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지도 어려웠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화태마을 어촌계장이었다. 정 씨와 마찬가지로 화태마을 귀어인으로 시작해 어촌계장이 된 박민호 씨의 도움에 힘입어 정착할 수 있었다.

처음 2년 정도는 타인의 어장에 가서 일손을 도왔다. 양식업은 사료 급이 외에도 1년에 여러 차례 그물 정비와 교체가 필요한데 이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물 교체 시기마다 다른 어장에 먼저 찾아가서 일을 돕고 또 거꾸로 도움을 받으면서 정을 쌓고 지금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어장에도 오며가며 지내는 돈독한 사이가 됐다고 전했다.

또한 마을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마을환경 정화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물론 마을에서 개최하는 행사 때마다 먼저 나서서 짐을 나르고 준비를 돕는 등 젊은 일꾼으로 해야 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화활동과 더불어 해안가에 있는 해양쓰레기 수거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또 마을에서 실시하는 주민화합 한마당 등 행사가 개최되면 꼭 참석했지요. 가두리 작업 중 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은 품앗이를 통해 서로 도와가며 정을 나누고 일을 해나가요.”

또한 그는 홀몸어르신 가정방문 봉사 등 마을과의 화합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하니 더 빨리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말했다.

당신도 귀어귀촌할 수 있어요!

“귀어귀촌을 준비하면서 귀어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특히 어촌계 귀어의 경우는 외지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그가 겪은 화태마을은 들었던 이야기와는 달랐다. 화태도에 위치한 화태마을은 사방에 크고 작은 섬들이 둘러싸고 있다. 예로부터 주변 섬들과의 교류도 많았고 임진왜란 때는 주변 섬들의 난민들을 수용하며 피난처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화태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을 배척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외지인을 받아들이고 지원하며 정착을 도와 어울림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귀어 준비 과정에서 어촌계 중 화태마을과 같이 외지인에게 열려 있는 마을을 찾아가보고 희망하는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여럿 만나서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조언했다.

“가두리 양식은 개인 사업이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요. 처음에는 물고기는 사료만 주고나면 알아서 잘 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말을 못 하는 생물이기 때문에 더 면밀히 관찰해야 하고 성어로 온전히 키워내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온전한 내 삶의 주인이 되다

그의 일상은 계절마다 편차가 있으나 보통 이른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근무한다. 그 이후는 여유로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또 회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개인 일정을 반영해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아무래도 양식업은 육체적인 노동이 수반되기에 당연히 힘든 부분이 있지만 키우는 숭어들이 사료를 잘 먹고 출하량이 늘어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들의 변함없는 응원 역시 그의 삶을 지탱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여수에서 살아온 가족조차 처음에는 여수로 귀어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드렸지만 그게 하필 왜 낯선 양식업이냐고 하셨죠. 지금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걱정하시긴 하지만 늘 지지와 응원으로 힘을 주십니다.”

정 씨는 앞으로 현재 있는 어장에서 규모를 더 확장해 연간 150톤 이상 숭어를 출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캄캄한 터널에서 여러 고민을 거듭한 끝에 돌아온 고향에서 새로운 의지를 다지는 그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피어났다.

<자료 제공=한국어촌어항공단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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