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2막 어촌 이야기] 박정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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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2막 어촌 이야기] 박정석 씨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4.02.1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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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사는 어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상북도 대표 해양도시 포항, 박정석 씨는 포항에서 나고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어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한때 선장을 꿈꾸며 8년 차 베테랑 항해사로 활동했지만, 아쉽게도 하선하고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는 바다라는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연안어업 선장으로 새롭게 도전하게 됐다. 하지만 연안어선 선장이 되기까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그가 성공적으로 귀어귀촌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년기 시절 함께한 포항 바다

호미곶과 영일대 등의 해돋이 명소가 즐비한 경북 대표 해양도시 포항. 박 씨는 포항의 어촌 중 하나인 임곡리에서 나고 자랐다. 박 씨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어선어업을 해왔다.

“부모님께서 새벽에 출항해 잡아 오시는 갖가지 수산물들이 우리 가족에게는 꿈과 희망이었고, 어린 시절 바다와 물고기가 저와 동생에게는 놀이터이자 장난감이었습니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바다가 익숙했던 박 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부모의 일을 옆에서 조금씩 도왔다. 그물 손질부터 배 청소, 미끼 끼우기 등의 기초적인 업무들을 도우면서 박 씨는 어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이에 고등학교도 바다와 관련 있는 포항해양과학고로 진학했다.

박 씨는 고등학교 시절에 항해사 자격을 취득했고, 이를 통해 졸업 후 참치잡이 원양어선에 승선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귀어의 밑거름 된 원양어선 생활

그러나 갓 스무 살이 된 박 씨에게 참치잡이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바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양어선보다도 큰 파도와 거칠고 험한 선배들 밑에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고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리기만 하던 제가 하선을 고민할 즈음 선장님께서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다. 남자라면 부딪쳐서 이겨내라’는 말씀과 함께 6개월만 참고 견디면 누구보다 잘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박 씨는 선장의 조언을 들은 후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참치잡이 작업을 해나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8년 차 베테랑 항해사가 될 수 있었다. 박 씨는 원양어선 선장이라는 꿈을 갖고 열심히 원양어선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자신을 돌볼 시간 없이, 어업활동에만 몰두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건강 문제가 그의 원양어선 생활에 발목을 잡게 됐다.

결국 박 씨는 원양어선 선장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선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바다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그리게 됐다. 고향인 포항 임곡항으로 돌아온 박 씨는 연안어업 선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귀어 생활

박 씨는 2018년 연안어업 선장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부모가 연안어업을 하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기억과 8년간의 원양어선 경험이 있어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귀어귀촌 초기의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선을 구매하는 일부터 어려움이 따랐다. 박 씨는 원양어선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소형어선 거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이에 어선 구매를 위해 포항뿐만 아니라 경주, 영덕, 울진 등지를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하는 데에만 5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고생해서 어선을 구매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고기는 그물을 아무 데나 막 놓는다고 해서 잡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선장은 고기가 잘 잡히는 지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막 어업을 시작한 박 씨가 바로 그 지점을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또 어획 동향이나 그물 치는 장소 등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는 그물을 이쪽저쪽 깔아서 잘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해서,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 되는 그물을 바다에 수장시켜버리기도 했어요.” 

박 씨는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오히려 더 악착같이 조업했다. 원양어선을 할 때의 경험을 살려 하루에 15시간에서 18시간 정도의 조업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2년쯤 됐을 때 진정한 연안어업 선장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연안어업에 관한 끝없는 연구

박 씨는 귀어귀촌 후 연안어업 선장으로 자리 잡는 데까지 배움과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귀어귀촌 초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조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봤고 ‘귀어귀촌 종합센터’를 알게 됐다. 박 씨는 귀어귀촌 종합센터에서 온라인 교육과정 9과목 20시간을 이수했다. 또한 어업인후계자 자금과 청년 어촌 정착 지원사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박 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전년도 수온 및 바람 등의 기록을 수협 위판실적과 대조해 어획 동향을 파악했고,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해당 어구를 미리 준비해 조업했다.

또한 국내외 기상 애플리케이션의 날씨 정보를 분석해 기상이 악화가 되기 전 미리 조업하는 등 바다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을까. 박 씨는 빠르게 매출을 올리게 됐다.

1년 차 때 약 9600만 원 상당의 매출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2년 차와 3년 차 때는 1억 원 이상, 4년 차부터는 2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마을에 융화되기 위한 노력

박 씨는 하루 15시간 이상의 시간을 조업하는데 보냈고, 다른 사람의 3배가량 되는 그물을 작업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는 어업활동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데에도 열정을 쏟았다. 포항 임곡리에는 미역 돌 닦기 행사, 신정 해맞이 행사, 임곡항 효잔치 등 다양한 마을 공동체 행사들이 있다.

박 씨는 이러한 마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어촌계 고령의 선장 중, 나루에서 그물 당기기 등의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돕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을까? 박 씨는 어느덧 주민들에게 인정받는 마을 청년이 됐다.

청년 어업인, 가장이 되다

이렇게 마을에서 인정받게 된 청년은 어느덧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이 됐다. 박 씨는 귀어귀촌을 한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지난 2022년에 결혼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물고기 잡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니 신기해했어요. 나중에 혼자서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면서 놀라더라고요.”

박 씨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인생의 소중한 반쪽을 얻었다. 지난해는 자녀도 출산했다. 상황 상 책임감이 커져 조업시간을 늘릴 법도 하다.

그러나 박 씨는 오히려 조업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 쉬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처음에는 15시간씩 일하면서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일을 좀 줄이고 여가를 늘리려고 해요.”

박 씨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조업시간을 줄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 것’을 만들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이전보다 어획량은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가정도 꾸리며 성공적으로 마을에 정착하게 됐다.

바다는 배신하지 않는다

고향인 포항 임곡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박 씨는 귀어귀촌 후 삶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냐는 질문에 ‘100% 만족’한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자리 잡기까지 힘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노력하는 만큼 벌 수 있기에 제가 하는 이 일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어부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박 씨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귀어귀촌을 권유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귀어귀촌한 박 씨는 어느덧 6년 차 연안어업 선장이 됐다. 어느덧 베테랑 귀어귀촌인이 된 그는 다음 목표로 두 가지를 세웠다. 하나는 고향 임곡리를 청년 어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많은 어촌이 고령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박 씨는 청년이 마을에 들어와서 쉽게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생각이다.

박 씨의 또 다른 목표는 바로 선단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청년 어업인들이 모여 함께 조업을 나가는 모습을 꿈꾼다. 

“다른 것들은 다 배신해도, 바다는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우리 옆에는 항상 바다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마시고 도전하십시오.”

박 씨는 이처럼 이야기하며, 귀어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전할 것을 권했다. 또한 예비 귀어귀촌인들에게 어업이라는 것이 이론과 실제가 다른 만큼 직접 몸으로 느껴볼 것을 추천했다. 박 씨의 바람처럼 청년들이 포항 임곡항으로 모여들어 선단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활기찬 어촌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자료 제공=한국어촌어항공단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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