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벙커’에서 만나는 제주 자연과 삶
상태바
‘빛의 벙커’에서 만나는 제주 자연과 삶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3.12.04 0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빛의 벙커’는 KT가 국가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센터로 1990년 완공했다. 철근콘크리트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은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벽두께 3m에 이른다. 준공식엔 대통령까지 참석했지만, 센터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건물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마치 산의 일부처럼 보이게 위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방호벽을 두르고, 이중 철조망과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한 뒤 군인이 통제했다.

센터는 2000년대 초부터 용도 없이 방치되다 2012년 민간에 불하했고, 2015년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옛 센터의 사무실과 숙소동에 들어섰다. 센터 벙커는 한동안 공연장과 행사장 등으로 쓰이다가2018년 11월에 빛의 벙커가 문을 열었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 ‘빛의 벙커’

빛의 벙커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이다. 빔 프로젝터 1990대가 벽과 바닥 등에 영상을 투사해 명화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편집한 거장의 작품이 삼면을 장식하는 순간, ‘빛의 벙커’라는 이름을 실감한다. 

개관 기념 전시로 연 ‘구스타프 클림트-색채의 향연’과 2019년 ‘빈센트 반 고흐-별이 빛나는 밤’이 큰 인기를 끌며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이왈종 화백의 제주에서의 삶과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투영한 ‘이왈종-중도의 섬 제주’가 전시되고 있다.

빛의 벙커 전시는 평면적인 회화 전시가 아니라, 거장의 작품을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다. 이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면 된다. 가장자리 의자는 벽에 등을 기댈 수 있어 편안하다. ‘불멍’이나 ‘물멍’을 하듯 작품을 감상하기 좋다.

전시장은 하나의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거울로 이뤄진 작은 미러룸, 전시 중인 작품을 한 장씩 보여주는 ‘ㄷ 자형’ 갤러리룸 등과 여러 개의 벽이 공간을 구획해 단조롭지 않다. 입구나 열린 창이 프레임 역할을 해 보는 방향에 따라 흥미로운 시선도 연출한다. 시설의 면과 선을 교차하거나 겹치도록 촬영하면 색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전시와 전시 사이, 미디어 아트 작품이 사라지는 막간에 콘크리트 공간이 날것 그대로 보여 잠시나마 옛 센터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빛의 벙커는 남쪽 입구와 북쪽 출구의 모습이 똑같다. 입체적인 사다리꼴로, 입구 위쪽은 수목이 무성해 공간을 위장한 흔적이 엿보인다. 벙커 옆에는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있다. 카페와 박물관이 공존하고, 창이 넓어 숲을 바라보며 커피 마시기 좋다. 인근 바람의 숲이나 대수산봉 둘레길, 대수산봉 정상 등을 연계해 산책 삼아 걸을 만하다.

서귀포 곳곳, 둘러보기 좋은 관광지

빛의 벙커에서 가까운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잇는 해안으로, 썰물 때는 이끼 낀 빌레(너럭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암이 바다를 만나 굳으며 생겨난 지형이다. 그 위를 걸어볼 수 있는데 성산일출봉까지 뻗어나간 풍경이 장관이다. 광치기는 ‘광야처럼 넓다’라는 뜻이 있고, ‘관치기’라는 슬픈 이름도 있다.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죽으면 파도에 시체가 밀려와 관을 짜서 묻었다고 해서 유래된 듯하다. 

본태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지은 건물이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잇는 동선이 미로처럼 이어져 연신 호기심을 자아낸다. 2관 2층 통로에서 보는 제주 남쪽 바다와 산방산, 단산, 모슬봉의 파노라마 풍경 역시 자연을 담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특징을 잘 드러낸다.

본태(本態)는 ‘본래 형태’를 뜻한다. 특히 한국 전통 공예품 전시가 돋보인다. 1관은 소반과 보자기 등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4관은 전통 상례와 관련된 꽃상여, 용수판, 용마루 꼭두 인형 등이 눈길을 끈다. 3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 전시실은 공간을 체험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제주의 활기를 느끼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서귀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근래에는 관광객에게 더 인기다. 아케이드 형태로 365일 열리는 시장인데, 제주의 특산물과 간식거리가 많다.

다진 마늘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마늘통닭, 김밥과 어묵, 떡볶이 등을 다 함께 넣은 제주식 모둠 떡볶이인 모닥치기 등이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각종 회를 비롯해 흑돼지김치말이, 오메기떡 등 삼시 세끼로 부족한 먹부림의 진수를 펼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