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수산물 제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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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수산물 제외하라
  • 탁희업 기자
  • 승인 2023.08.2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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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해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액 상한액이 2배로 상향됐다.

올해 시행 7년 차인 ‘청탁금지법’은 그간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 금품 수수와 같은 불공정 관행을 개선해 좀 더 투명한 청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가의 사치스러운 선물 등을 공직자에게 전달해 공정한 직무 수행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일명 김영란법은 국민인식도 조사에서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이 90% 이상일 정도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규제로 인식돼 민생 활력을 저하시킨다는 우려와 반대 목소리도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특히 설이나 추석 등 명절 선물 판매량이 높은 수산물의 경우 이 법으로 말미암아 소비와 판매가 제한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선물가액 상향은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수축산업계의 피해 상황을 고려해 결정됐다는 것이 이번 시행령 개정의 배경이다.

이번 권익위의 결정에 농수축산업계는 환영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설이나 명절에 선물가액이 30만 원까지 가능해져 명절 특수까지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미풍양속의 의미를 담은 명절 선물은 주고 받는 이들이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공직자의 직무 수행을 훼손하는 뇌물성으로 변질되면서 법이 제정되고 물품 가액까지 규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긍정적인 여론과 법 제정의 배경만으로 제도의 유지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청렴한 직무 수행에 반하는 행위는 근절하고 단속해야 하겠지만 관련 산업의 유지와 피해 방지를 위한 대안도 마련돼야 한다.

수산물은 어촌과 어업인들의 유일한 소득원이다. 또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경우 수산물이 명절 선물이나 특산물로 감사의 정을 나누는 데 이용돼왔다. 특히 수산물이 선물 꾸러미로 만들어져 명절 선물로 판매됨으로써 어업인들은 명절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전복이나 굴비 등 고가의 물품이 청탁성으로 건네지기도 하지만, 어업인들이 정성들여 생산한 수확물로서, 미풍양속의 의미가 담겨지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이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멸치나 김, 미역, 다시마 등은 감사의 표시나 정을 나누는 물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어업인들은 수산물을 금품 등의 수수 금지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수차례 요구하기도 했다. 가액 기준으로 수산물의 소비, 판매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수산업계의 주장이다.

수산업계는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농수산물을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러 차례 건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상황을 감안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서 권익위원들이 변화하는 사회, 경제적 상황, 비대면 선물 문화, 국민들의 소비 패턴 변화 등 청탁금지법의 제정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 사회의 부패에 대한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엄정하게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예외나 일시적인 조정을 한다면 법 취지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권익위의 선물가액 상한액 상향 조정에도 불구하고 어업인들에게 선심 쓰는 일회성 정책에 불과하다는 어업인들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단순한 선물가액 상향 조정으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업인들의 경영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수산업계는 기후변화로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어선원 구인난, 국제 원유가격 급등, 경기 장기 침체에 따른 판매 부진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라는 악재가 겹쳐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소비 감소로 적체물량이 증가하고 경영 악화로 이어져 도산하거나 도산 위기에 처한 어업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권익위는 시행령 개정을 확정하고 법 개정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면서 지역 순회 간담회도 진행하고 있다. 어업인과 수산업계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수산물을 제외해달라는 이유를 이번 기회에 찾길 바란다.

단순히 예외 적용이나 특혜가 아니라면 의견 수렴 과정에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일회성, 선심성 정책이 아닌, 관련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어촌과 어업인들을 살리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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