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구보증금제 정착을 위한 전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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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구보증금제 정착을 위한 전제 조건
  • 탁희업 기자
  • 승인 2023.03.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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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져 올리거나 해안가 등에서 수거한 폐어구를 가져오면 보상금 형태의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어구보증금제도가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러한 어구보증금제도를 담당할 어구보증금관리센터가 지난 22일 개소식을 가졌다. 본격 운영을 위한 준비가 끝난 셈이다. 올 하반기에는 통발을 대상으로 시범사업도 실시된다.

어구보증금제도는 어구 생산·수입업자가 일정 금액의 보증금이 포함된 어구를 어업인에게 판매하고, 사용 이후 어구를 해상에 폐기하지 않고 지정된 장소로 가져오면 보증금을 다시 되돌려주는 제도로서, 소주나 맥주 등의 공병을 가져오면 일정 금액을 돌려주는 것과 같다.

어구보증금관리센터는 어구보증금의 환급·관리, 취급수수료의 지급·관리, 미환급보증금 관리, 폐어구 수거·처리 지원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내년 초 첫 시행 대상은 통발 어구로, 종류별 통발어구의 보증금액, 반환장소 등 구체적인 사항은 올해 어업인 현장 설명회를 통한 의견 수렴 및 시범운영 등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통발 어구 시행 후 문제점 등을 보완해 부표, 자망으로 확대 추진한다는 것이 해양수산부의 계획이다.

어구보증금제의 목적은 제품이 사용된 후 방치되지 않고 적절한 폐기물 처리 프로세스로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다. 잠재적 오염 유발 요인을 제거하고 특히 바다의 수산자원을 보호·육성하기 위함이다.

국내 연간 해양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의 약 54%인 3만6000톤이 통발, 자망 등 폐어구로부터 기인한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유실·침적된 폐어구로 발생하는 수산자원의 피해 규모는 매년 수산물 생산량의 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유령어업(Ghost Fishing)에 의한 피해 규모를 연간 약 42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서·남해안의 각 어장에서는 폐어구로 말미암은 작업 시간 증가와 어획량 감소는 물론 폐어구에 따른 해상부유물 감김 사고도 전체 어선사고의 13% 정도로 높은 편이다.

해양오염원을 근본적으로 줄이고 수산자원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연안이나 어장, 바다 밑에 방치된 폐어구를 다시 육상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터전인 어장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이 종사자인 어업인들과 이용자들의 당연한 몫이지만 유실되는 어구나 침적된 어구를 건져 올리거나 육상으로 가져오는 일은 만만치 않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폐어구나 침적된 어구 회수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올 하반기에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통발의 경우 보증금은 1000∼3000원, 취급수수료는 25원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금액은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결정될 예정이지만 어업인들이 스스로 폐어구를 수거해 육지로 가져올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된 1회용컵 보증제는 2008년 폐지됐다가 지난 2022년 다시 부활됐지만 보증금 300원은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100원인 소주병, 500원인 1회용 교통카드도 회수율이 극히 미미한 정도다.

폐어구를 보관할 집하장 확대도 사전에 준비해야 할 과제다. 현재도 규모가 작은 항·포구나 섬지역에서는 바다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보관할 장소가 없어 어업인들이 바다에 다시 버리는 경우도 많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전국 30개소에 육상 집하장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점진적으로 전국 2044개 어촌계로 확대해 어업인의 불편을 최소화해나간다는 방침이지만 관리나 회수율에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구 회수 관리자들에 대한 지원방안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해양수산부는 우선 전국 70개 지구별 수협을 통해 폐어구 회수관리자 업무 위탁 및 반환 절차 등을 올해 시범운영을 통해 검증한 후 전국 214개 수협 위판장으로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어구보증금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현재 실시 중인 어구실명제와 연계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우선돼야 한다.

어구를 구입할 때 실명제를 실시해 어구 종류와 구매량 등을 파악해 사용토록 하고 유실 또는 파손된 어구에 대한 추가 구매를 허용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보증금 부과·환급 대상 확인 표식이 된다면 보증금 반환은 물론 어구 사용량에 대한 파악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어구보증금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장 어업인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가 필요하다. 이들에 대한 유인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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