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수산물’ 활용도 제고, 식량주권의 첫걸음
상태바
‘못난이 수산물’ 활용도 제고, 식량주권의 첫걸음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2.11.28 0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남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장
이남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장

‘회자인구(膾炙人口)’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맹자(孟子)의 진심장구(盡心章句)에 나오는 말로, 회(膾)는 잘게 저민 날고기를 의미하고 자(炙)는 구운 고기를 뜻한다.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기를 꺼리고 성을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은 성은 다 함께 쓰는 것이지만 이름은 그 사람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회자인구는 훌륭한 시문(詩文) 등이 맛있는 음식처럼 칭찬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며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비유한 의미로 사용된다. 

올가을 농산물 유통에 있어 언론이나 대형마트 등을 중심으로 가장 빈번히 회자되고 있는 말이 바로 ‘못난이 농산물’이다. 못난이 농산물이란 맛과 영양 등 품질 면에서는 일반 농산물과 차이가 없으나, 크기가 작거나 외관에 흠이 있는 일명 B급 농산물을 일컫는 말이다. 못난이 농산물은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적인 농산물과 동일한 생산 과정을 거쳤음에도 외형적 결함으로 유통규격 등급 외로 분류되며, 시장에서 소비자를 만날 기회마저 잃게 된다. 

못난이 농산물은 동일한 물과 토양, 햇빛으로 자라 같은 맛과 영양분을 가진 생산물이지만,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농산물의 양이 연간 13억 톤에 이르며, 이는 세계 식품생산량의 3분의 1 규모에 해당한다. 또한 폐기 농산물의 문제는 비용 및 폐수 문제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의 문제도 안고 있다.

농식품의 폐기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발생량의 6~10%로 추정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128개 산지농협의 총생산량 중 등급 외 비율은 평균 11.8%이다. 즉 100개의 농산물 중 12개의 제품은 소비자의 선택이 아닌 유통단계에서 버려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생산단계에서의 선별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므로 농산물 폐기량은 FAO에서 추정하고 있는 30% 수준일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버려지는 농산물의 규모와 폐해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더불어 최근 고금리와 고물가에 농산물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어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 폐기되던 B급 농산물이 올해는 외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평균 20~30% 저렴한 가격의 매력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올가을에는 시장이 아닌 소비자 관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주요 대형마트의 못난이 농산물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예를 들면 한 대형마트는 시세보다 최대 30% 저렴한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판매 중인데, 올해 3분기까지 못난이 농산물의 누적 매출액이 전년보다 200% 이상 신장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못난이 농산물 소비가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2014년부터 못난이 농산물 유통 및 소비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으며, 전문 유통업체도 출범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못난이 농산물 생산자 협력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다.

시각을 수산물로 돌려보면 어떨까? 아직 ‘못난이 수산물’이라는 말은 다소 어색하며, ‘B품’ 또는 ‘B급 수산물’이라는 말이 업계에서는 회자되고 있다. 수산물은 농산물에 비해 규격화와 표준화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일명 ‘못난이 수산물’의 발생빈도와 양이 월등히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수산물의 경우 등급 외 비율이 얼마나 되며, 상품성이 낮아 산지 또는 유통단계에서 폐기되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기초 통계도 부재하다. 따라서 최근의 빈번히 회자되고 있는 고금리·고물가의 영향에 따른 B급 상품의 소비 확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못난이 수산물’의 활용도 제고방안 모색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정부의 해양수산 정책의 핵심과제 중 하나가 수산업 ‘식량주권 강화’이며, 이를 위해서는 수산물 수급관리체계 고도화가 선행돼야 한다. 수산물 자급률이 하락세를 보이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제한된 해역에서의 수산물 증산정책은 다각적 검토와 협의 과정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나라 수산업 여건을 감안할 때, 수산식품 식량주권 강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못난이 수산물’의 활용도 제고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못난이 수산물’이 곧 ‘알뜰 소비’와 ‘가치소비’의 대명사로 회자(膾炙)되기를 희망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