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시를 만나다] 털 난 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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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시를 만나다] 털 난 꼬막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0.03.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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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난 꼬막

박형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을 열어준 사람은 오촌당숙이시고
끝까지 뒤를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사람은 부산 고모님이시고
나하고 엄마, 길보다 낮은 집에 남겨두고
군대에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시고
젖도 안 떨어진 나 안고 ‘천신호’를 타고, 멀미를 타고 가덕섬으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시고
빨아 먹을 사람 없어지자 젖이 넘쳐나
염색공장 변소 바닥이 하얗도록 짜낸 사람은 다시 우리 어머니시고
젖 대신 감성돔 낚아서 죽 끓여 나를 먹인 사람은
큰아버지시고
무엇을 씹을 때부터
개펄에서 털 난 꼬막 캐 와서 먹인 사람은 큰어머니시고
그렇게 저녁마다 차나락 볏잎으로 큰아버지 주먹만 한
털 난 꼬막 구워주신 사람 큰어머니시고
한 번씩 나 안아보러 오는 우리 엄마에게
덕석에서 늦은 저녁상을 받으며
욕 잘하는 우리 큰어머니
니 털 난 꼬막으로 나왔다고 다 니 새끼냐 하셨을 것 같고
우리 엄마 울고
우리 엄마 울고
털 난 꼬막 목젖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 박형권 작가는…
부산 출생. 200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우두커니>, <전당포는 항구다> 등. 장편동화 <웃음공장>,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등. 청소년소설 <아버지의 알통>.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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