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시를 만나다] 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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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시를 만나다] 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다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0.02.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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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다

손택수

오징어는 바다를 갈아 먹물주머니를 채운다. 바다 속에서 나온 책 <자산어보>, 바다를 벼루 삼아 먹을 갈며 캄캄한 유배를 살던 사람의 이야기. 오징어 먹물로 쓴 글은 유난히 반지르르 윤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 글씨들 오래되면 희미하게 지워져서 마침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는데, 바닷물에 담그면 먹빛이 그대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지상에서 잠시 반짝이다 져버릴 운명을 위해 바다에 뛰어든 적이 있는가, 바다 속에 수장된 뒤 부활하는 말들을 꿈꾼 적이 있는가. 여기는 잠시도 망각을 견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땅. 그러나 먹물이 들려면 오징어 먹물쯤은 되어야 한다. 막막하게 뻗어간 수평선 위로 번지는 먹물을 뒤집어쓸 줄 알아야 한다.
 

※ 손택수 작가는…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나무의 수사학>, <목련전차> 등. 노작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신동엽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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