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
박서영
슬픔은 성게 같은 것이다
성가셔서 쫓아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무심코 내게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찾아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성게가 헤엄쳐 왔다
온몸에 가시를 뾰족뾰족 내밀고
누굴 찌르려고 왔는지
낯선 항구의 방파제까지 떠내려가
실종인지 실족인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심장
실종은 왜 죽음으로 처리되지 않나
영원히 기다리게 하나
연락두절은 왜 우리를
노을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항구에 앉아있게 하나
달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앉아있게 하나
바다에 떨어진 빗방울이 뚜렷한 글씨를 쓸 때까지
물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하나
기다리는 사람은 왜 반성하는 자세로
사타구니에 두 손을 구겨 넣고는 고갤 숙이고 있나
꽃나무 한 그루도 수습되지 않는
이런 봄밤에
저, 저 떠내려가는 심장과 검은 성게가
서로를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밤에
※ 박서영 작가는…
경남 고성 출생. 199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좋은 구름>.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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