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수산업의 미래] 어촌마을 재생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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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수산업의 미래] 어촌마을 재생방안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19.12.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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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환경 가치 향상으로 어촌·어항 지속가능성 높여야

어촌의 매력과 가치 잊고 흔한 장치물 설치 의존
어촌마을·산업경관은 미래 위해 보존해야 할 자원
공공재원 투입이 지역 자생력 후퇴시켜선 안 돼

서수정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어촌·어항 재생과 장소 만들기
인구 감소로 지방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지방 중소도시는 인구관리정책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고령화가 심각한 농어촌은 귀농·귀어민 유치를 위해 주택을 제공하거나 정착자금과 사업자금 융자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청년층을 유입하기 위한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역 활성화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2019년부터 시작한 어촌뉴딜 300사업 또한 쇠퇴한 어촌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그동안 국가어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돼왔던 소규모 어항과 배후 주거지를 대상으로 한다. 어촌뉴딜사업을 위해 해양수산부는 ‘어촌·어항법’을 개정해 어촌·어항 재생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2019년 70개소, 2020년 120개소를 선정했다.
사업대상지마다 100억 내외의 마중물이 투입될 어촌뉴딜사업은 어항정비사업과 배후 어촌마을의 재생사업이 결합된 것으로 기존 어항중심의 환경개선사업과 차이가 있다. 또한 소득창출사업과 어업경제활동 구조 개선사업을 병행하면서 어촌다움 회복을 위해 해양경관과 산업경관을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글로벌 목표인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실현수단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촌다움이란 지역성을 말하며 ‘삶터로서 지역의 공간과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경험하면서 만들어온 가치(문재원, 2017)’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촌·어항 재생은 ‘쇠퇴한 지역에 새로운 삶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LGA, 2000)’을 말한다. 그러나 어촌뉴딜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공재원 투입이 지역의 자생력을 오히려 후퇴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수많은 정책사업이 사업목표가 정해진 후 지역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책 의도와 달리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모든 정책사업이 그렇듯이 정해진 기간 안에 단기간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지역주민들 스스로 지역문제를 찾아내 마을의 비전과 방향을 공유하기도 전에 사업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된다.
이는 국비 지원을 받기 위해 작성한 공모사업계획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업계획서에 담긴 주요 사업은 대부분 상징탑과 전망대, 보행데크, 주민소득 향상을 위한 공동작업장과 어구보관창고 등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업으로 어느 지역이나 유사하다. 지역주민들은 출렁다리를 조성하면 관광객이 몰려올까, SNS에 한 컷이라도 올릴 수 있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해양레저를 좋아하는 젊은 계층을 위해 바다낚시터를 만들고 레저 서비스시설을 만들면 젊은이들이 몰려오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으로 어촌의 매력과 가치를 잊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치물 설치에 희망을 걸고 있다.

어촌·어항의 공간환경 질 향상
어촌뉴딜사업에서 공간환경 디자인 제고를 위한 선도사업은 이러한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많은 지역개발사업이 공공재원 투입에도 불구하고 매력 있는 마을을 만들지 못한 데는 오랜 세월 누적돼온 마을의 생활문화적 속성, 시간의 켜가 담겨 있는 건축물과 공간을 살리지 못하고 경쟁적으로 기반시설과 공간을 조성했지만 ‘장소’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촌뉴딜 공간환경 디자인 선도사업은 건축물과 주변경관, 공공공간 등을 통칭하는 공간환경의 질 향상을 통해 어촌·어항의 장소성을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지역의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과도한 디자인을 억제하고 지역주민의 소득 향상과 생활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서 공간환경 디자인은 어촌다움이 살아 있는 좋은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하며, 물리적 환경과 여기에 담는 생활과 문화, 경제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합하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와 주체가 협력적으로 디자인하는 과정과 디자인 프로세스를 정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 프로세스의 정상화는 마을의 미래 비전을 주민들이 함께 설정해 여기에 맞는 사업을 공간환경 마스터플랜에 반영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말한다. 특히 소득창출시설이나 친수공간 등 물리적 시설 설계는 최저가 입찰보다 공모 방식을 통해 역량 있는 전문가를 선정해 시행하도록 하며, 디자인 가치가 기획 단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서 규정한 설계 의도를 구현하는 것이 디자인 프로세스의 정상화이다. 이를 위해 공간환경 마스터플랜 수립부터 건축, 토목, 조경 등 각 분야별 전문가가 적정한 시기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게 거버넌스 체계와 디자인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공간환경 질 향상을 위한 기본원칙
공간환경의 질 향상을 위한 디자인관리체계 구축은 궁극적으로 어촌다움의 회복과 지역정체성을 위한 자원 보존은 물론 새로운 자원을 만들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생활환경을 개선하며, 편리하고 안전한 어업활동 지원을 위해 어항 주변의 공간환경을 개선하고, 방문객을 위한 서비스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어촌·어항의 공간환경 질 향상을 위해서는 우선 지역주민들이 함께 ‘우리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자원과 유산을 장소로 남겨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방향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세대가 떠나지 않고, 떠났던 친구들과 가족들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거나 살고 싶은 장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공간환경 마스터플랜에 담아야 한다. 오랫동안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던 주민들은 어촌·어항 그 자체가 보여주는 경관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버려진 어구, 폐어선, 폐어장은 그 자체로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붉은색 농토와 저물어가는 노을이 펼치는 풍경은 도시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경관이다. 어업인들이 끌어 올리는 그물망, 선착장에서 어구를 정리하는 모습과 어업인들이 모여 바지락과 굴을 다듬는 모습, 낮은 담장의 골목길 등 어촌의 살아 있는 산업경관과 마을경관은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자원이다.     
여기에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화장실, 따가운 태양을 피해 쉴 수 있는 나무 그늘, 도시에서 밟아 보지 못하는 폭신한 흙길, 지역에서 생산하고 잡은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면 누구나 찾고 싶은 매력적인 마을이 될 수 있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작은 카페와 편안한 숙소는 덤이다. 이처럼 매력적인 어촌·어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해양생태계나 어촌경관의 가치를 보존하고 이를 훼손하는 요소들을 찾아서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관리하기 어려운 벽화나 보행데크, 새우나 과메기 조형물이 아니라 자연경관이 주인공이 되도록 어구를 정리하고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포토존을 만드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어구 창고를 만들거나 방문객 쉼터, 친수공원이나 주차장 조성을 목적으로 바다를 매립해서 물양장을 조성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어구보관창고를 만들기 전에 정해진 장소에 잘 정리해서 쌓아둔 어구는 어촌경관의 하나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어업인들이 인식하고 어구나 폐기물을 정해진 장소에 적치하도록 약속을 정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도시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공원이나 쉼터, 주차장이 부족해서 관광객이 찾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를 보기 위해서라면 불편함도 감수하고 찾아 나서는 것이 요즘 관광객의 행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득 창출을 위한 수익시설이나 주민공동이용시설이 필요한 경우에는 방치돼 있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활용하고 운영과 관리비용을 고려해 주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로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소득 향상을 위해 바다낚시터, 갯벌체험장, 산책로, 조망대 등을 설치할 때는 해양생태계나 경관 훼손은 없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마을에 방치된 오래된 빈집이나 빈 점포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조금 손을 보면 카페가 되고 책방이 될 수 있다. 빈집은 귀어민을 위한 임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마을호텔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 모두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빈집 주인을 설득해서 사용허가를 받아내고 방문객이 편안히 마을 분위기를 느끼면서 쉴 수 있도록 낡은 시설은 바꾸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어촌·어항 자산을 소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어촌어항 공간환경의 질은 과도한 장치나 형태, 화려한 색채로 치장한 건물이나 공원, 장식물이 아니라 자연경관과 해양생태계, 어업활동이 만들어내는 산업경관이 먼저 인식될 수 있도록 공간환경을 관리함으로써 향상될 수 있다.

해양생태계 복원을 어촌뉴딜사업으로 실현
어촌뉴딜사업을 통해 좋은 공간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폐어구, 폐자재를 어구보관창고 마감재로 활용하고, 버려진 그물망, 조개껍데기, 플라스틱 등 해양쓰레기를 활용한다면 조형물이나 장식품을 설치해도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해양쓰레기나 어업활동으로 남겨진 폐기물로 만든 에코백과 신발, 의자 등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은 어업인들의 소득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촌뉴딜사업을 통해 공간환경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결국 해양생태계 복원을 통해 어촌·어항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지역주민의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 향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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