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이어 오징어에도 현상금 걸릴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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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이어 오징어에도 현상금 걸릴 판”
  • 안현선
  • 승인 201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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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해안 어업인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 섞인 말이 나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오징어에도 ‘현상금’이 걸릴 판이라는 것. 이는 동해안에서 사라진 명태를 복원하기 위해 정부가 현상금을 내건 것에 빗댄 말이다. 그만큼 올해 동해안에는 오징어가 귀했다.
기자는 지난달 강원도 지역 몇몇의 활어시장을 찾았다. 가는 곳마다 크기가 작은 활오징어만 있을 뿐, 그 양도 많지 않았다. 오징어가 비운 자리는 제철 맞은 도루묵과 양미리, 대게가 차지했다. 크기가 큰 오징어는 없냐는 질문에 상인들은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내 저었다.

동해서 자취 감춰가는 오징어
“최근 몇 년 동안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왔지만 올해 같은 해는 처음입니다.”
윤국진 강원도오징어채낚기연합회 회장은 “바다 일이라는 게 아무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라 해도 이번처럼 난감한 때는 처음”이라며 얼굴 한 가득 착잡한 표정이다.
올해 강원도 지역 채낚기 어업인들은 일찌감치 오징어 조업을 접었다. 기름 값에 인건비 들여 배를 띄워도 오징어는 잡히지 않고 빚만 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경북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8월부터 10월까지 가을오징어가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한 경북 울진 죽변항에는 올해 출어를 포기한 빈 배들만이 항구에 가득했다.
죽변항에서 10여 년 째 오징어 조업을 하고 있다는 한 어업인은 “비싼 기름 넣어 바다에 나가도 하루 3만원 벌이가 안 된다”면서 “올해 오징어 조업은 물 건너갔고 12월부터 잡히기 시작하는 대게라도 많이 잡히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오징어 어획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오징어 어획량은 15만4555톤으로 1996년(25만2618톤)에 견줘 61.1% 수준에 그쳤다. 2005년 18만9126톤이 잡히면서 20만톤 선이 무너진 뒤 매년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
오징어 어획량이 줄면서 자연스레 가격은 폭등했다. 오징어 주 산지로 꼽히는 울릉수협, 구룡포수협 위판장에서 집계된 지난달 오징어 1kg당 시세는 7000원대로 작년 같은 달의 2800원대 보다 150% 가량 올랐다.
이처럼 오징어가 급감한 이유를 두고 어업인들은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은 북한수역에서 싹쓸이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과 저인망(트롤)어선의 불법 공조조업이다.

중국 어선의 싹쓸이조업 심각한 수준
중국 어선이 우리 수역을 침범해 자행하는 불법조업은 우리나라와 중국 간 갈등의 불씨가 된 지 오래다. 뉴스에서는 서해와 남해에서 이뤄지고 있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소식을 잇따라 전하고 있는데, 실은 우리나라 동해에서도 10년 전부터 중국 어선이 활개를 치고 있다. 중국 어선들이 현지에서 가까운 서해와 남해를 두고 1200~1500㎞나 떨어진 동해로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한 민간업체는 2004년 북한으로부터 동해 수역 입어권을 획득하고, 매년 1000척 이상의 어선을 동해로 보내고 있다. 오징어를 잡기 위해서다. 중국 해안가에 국한됐던 오징어 소비가 소득 증가, 냉동 설비 확대 등으로 내륙까지 확대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오징어가 돈이 된다는 얘기다. 중국 어선들은 현지의 금어기를 피해 매년 6월부터 오징어 최대 산지인 동해로 몰려들어 저인망 그물로 오징어를 쓸어 담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동해 어업인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중국 어선들이 오징어가 지나는 길목에서 싹쓸이하면서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는 것. 더구나 중국 어선 상당수가 북한 수역을 벗어나 우리 수역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일삼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그러는 몇 년 사이 중국은 매년 100만여톤의 오징어를 잡아들이며 세계 오징어 생산 1위 국가로 급부상했다.
이와 관련해 동해해양경비안전서 관계자는 “중국 어선들의 긴급피난 시 대형경비함정 이외에도 100톤 이하 소형함정을 추가배치하고, 특공대도 사전에 투입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우리 어선들의 어구와 해저케이블 등 피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징어 어획량 감소에는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싹쓸이뿐 아니라 저인망(트롤)어선과 채낚기어선의 불법 공조조업도 한몫하고 있다. 동해구 저인망어선의 어획량은 1996년 22톤에서 지난해 3만6574톤으로 1662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10톤 미만 연안복합어선 등 소형 어선의 어획량은 1만8895톤에서 4588톤으로 75.7%나 줄었다. 어자원 보호를 위해 어선들이 함께 고기를 잡는 공조조업이 금지돼 있지만, 채낚기어선이 집어등으로 불을 밝혀 오징어를 모으면 저인망어선이 와서 그물로 오징어 씨를 말리는 방식의 불법조업이 성행하고 있는 것. 하지만 단속이 쉽지 않다. 해양수산부의 공조조업 단속 실적(2001~2013년)을 보면, 동해구 저인망어선에 대한 단속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다.

어선감척 등 현실에 맞는 정책필요
동해안 오징어채낚기 어업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몇 년 뒤엔 동해안에서 오징어 보기가 힘들어 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에 강원도 지역 오징어채낚기 어업인들은 현실적인 감척 보상비 지원과 오징어 금어기간 축소 또는 폐지, 저인망 공조조업 단속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윤국진 회장은 “강원도 지역 오징어채낚기 어업인 50% 이상이 감척을 원하고 있는데 보상비가 현실에 맞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나서 이 문제를 적극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공연히 벌어나고 있는 저인망어선의 공조조업 문제도 감척 지원비가 현실화 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에서 오징어채낚기어업을 하고 있는 김성학 어업인은 금어기와 관련해 “금어기를 시행하면 4, 5월 두 달 동안 선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없을뿐더러 선주들 또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면서 “굳이 금어기를 시행하고 싶다면 오징어채낚기 어업인들에게 직불금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업인들은 동해안에서 사라지는 오징어 자원에 대해 가장 많은 우려를 나타냈다. 자취를 아주 감춰버린 명태 꼴 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윤 회장은 “명태처럼 오징어가 동해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국내 어선의 북한해역 입어 방안을 강구하는 등 정부가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며 “동해안에서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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