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어업 이대로 방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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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어업 이대로 방관할 수 없다
  • 남달성
  • 승인 2004.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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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고래가 우리연안에 봄나들이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는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구룡포앞 10마일 해상에서 무려 13m되는 어미고래 한 마리와 중간크기의 암컷 4마리 그리고 새끼 3마리 등 모두 8마리의 향고래가족을 발견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바다에서 노니는 향고래 몇 마리 본게 뭐 큰 대수냐”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원에 대한 모독이요 나날이 멸종되는 고래류, 특히 향고래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발견된 향고래는 멸종위기에 있는 백두산 호랑이를 목격한 것 이상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1922년 경북 경주군 대덕산에서 사살된 이래 남한에서는 아직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묘향산 백운대에 호랑이와 곰 등의 활동흔적이 있고 중국 지린성에 7~9마리, 헤이룽장성에 5~7마리가가 각각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향고래는 1930년 일본 포경선이 울산 앞바다에서 5마리를 잡은 이후 이번에 처음 목격된 것이다. 이렇듯 향고래에 얽힌 얘기는 수없이 많다. 이빨고래에 속하는 향고래는 수컷의 경우 19m, 암컷만 해도 13m가 될 정도로 크다. 무게 역시 수컷은 최대 57t, 암컷은 45t에 이른다.

평균 수명은 65~77세로 알려져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드럼통처럼 생긴 머릿속에 들어있는 밀랍성질의 기름은 절대영도(-278도C)에서도 얼지 않는 윤활유와 완전연소유를 간직하고있다. 특히 윤활유는 인공위성용으로 쓰일 정도로 고급기름이다. 더하여 해신 넵튠의 보물로 유별되는 용연향을 얻기 위해 18세기때부터 미국과 노르웨이가 남빙양 포경진출의 발판을 삼기도 했다. 용연향은 내장속에 끈적끈적한 송진같은 향료인데 고급향수 원료로 이용된다. 향고래는 생김새도 특이해 체구의 35%를 차지하는 사각형 머리를 갖고있다.

또 쭈굴쭈굴한 피부로 된 괴이한 형상을 한데다 초음파기능이 크게 발달, 심해저 3천m에서 2시간이상 잠수해 먹이를 잡아먹는다. 때로는 10m가 넘는 대형오징어를 포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해양의 신비가 가득한 과학의 총합체라고 부른다. 그만큼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향고래는 전세계 남북위 20도 선상에 서식하고 있다. 1999년 6월 일본 조사팀이 동중국해의 나카사키 근해에서 9마리, 올 2월 대마도 동부연안에서 한무리를 눈으로 확인한 것을 감안하면 동해 깊은 바다에 향고래 무리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향고래는 청동기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 태화강 반구대에 2마리가 음각돼있다. 또 작살에 꽂힌 고래를 비롯, 모두 52종의 그림이 새겨져있다. 특히 부산 시 영도구 동삼동 패총에서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고래뼈를 출토, 그 역사성을 입증하고있다. 따라서 정부는 오래전부터 이를 국보 285호로 지정, 관리하고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포경국이다. 그러나 신라 법흥왕(法興王)때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고래와 물개 등을 소와 돼지 등 가축과 함께 살육을 금지시켰다. 이 때문에 포경어업이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대원군(大院君)이 쇄국정책을 펼때 미국과 영국 러시아와 독일 등 세계 열강들은 포경선을 타고 우리나라를 찾아와 개국을 요청했다. 그만큼 고래잡이 역사는 장구하다. 광복이후 본격적으로 포경어업이 꽃피울땐 고래고기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일본인들은 고래고기를 아주 즐긴다. 6.25동란때 월남피난민이 부산으로 몰려왔을때 또 한차례 포경어업은 붐을 이뤘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란 말이 부산을 비롯, 전국적으로 파급될 정도였다. 부산 어물시장으로 이름난 자갈치시장주변에선 고래고기장사가 성업을 이뤘다.

그러나 지난 1982년 제 36차 IWC(국제포경위원회)총회에서 1986년부터 상업포경을 잠정포기토록 결의함으로써 국내 포경어업은 종장(終章)을 고하고 말았다. 그이전 국내 포경어업은 포경선 21척에 연간 1천마리 안팎의 고래를 잡았다. 포수 등 고래잡이 가족만도 1천5백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시설이 무너지고있다. 그 흔하던 포수도 이젠 고작 2명이 생존하고 있을뿐이다. 그 뿐인가. 포경선도 모두 해체되고 말았다. 조사선도 없고 연구인력도 극히 한정돼있다. 이같은 기반시설 파괴에 정부도 한몫했다.

미국의 명태어획쿼터 중단 협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포경업자들을 불러 포클랜드 오징어잡이 허가권을 주는 조건으로 모두 선체를 사들여 해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향고래 발견을 계기로 국내 포경어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IWC가 요구하는 대로 조사포경에 나서야 한다. 자원의 적정량 조사와 함께 자원관리에 앞장서야 한다. 1946년부터 1986년 모라토리엄이 실시될때까지 우리나라는 세계 포획량의 15,2%에 이르는 밍크고래와 29.5%에 달하는 귀신고래를 잡은 기록이 있다. 그만큼 우리연안에는 귀하디 귀한 고래류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 왜 우리가 조사포경마저 못하는가. 아직도 정부가 가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외신용도를 잃은 것도 한 요인이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한국은 1985년 과학적 자원조사를 위해 연간 1백80마리를 잡아야 한다고 IWC에 조사보고서를 냈다. 반면 노르웨이와 아이슬랜드는 1987년 5~10마리를 포획하면 조사포경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누구 말을 듣겠는가. 우선 IWC가 바라는대로 협약이행에 나서야한다. 그러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포경어업을 둘러싼 국제환경은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고있다. 중국이 포경어업에 관심을 표명하고 러시아도 이를 외면하지 않고있다. 우리는 2002년 10월 울산에서 귀신고래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한데 이어 내년 5월경엔 제 57차 국제포경위원회를 개최한다는 희망을 안고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도 포경어업을 재건하기 위해 우선 조사포경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설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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