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깊어지는 아빠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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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깊어지는 아빠의 한숨
  • 유희원
  • 승인 2004.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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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벌써 3개피 째 담배다.
살며시 열린 내 방 문틈 사이로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는 아빠의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만 보인다.
11년 전 가족과 당신의 건강을 위해 힘들게 끊었던 담배인데...
창밖엔 나흘 째 비가 내리고 있다.
아빠는 뱃일을 하시느라 성한 데가 하나 없는 거친 손으로 창문을 쓱 닦아보신다.
"빌어먹을 비..."
태풍 루사가 지나간 뒤로 비만 내리면 나즈막히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곤 내리는 비에 한숨을 싫어 보내셨다.
아빠의 한숨소리가 내 귓전에 맴돌았다.

태풍 루사가 전국을 휩쓸고 간지 일년이 지났다.
그 당시 원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로서는 그러한 긴급한 상황에 대해서 뉴스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원주는 큰 피해가 없었던 터라 뉴스를 봐도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연신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라는 시작으로 앵커들과 기자들이 번갈아 가며 다급하고 심각한 방송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루사가 지나가고 3개월이 지나서야 집으로 가는 길에 태풍 루사로 인한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도로는 3개월이 지났는데도 쩍쩍 갈라져 있었고 논에는 불었던 물이 빠지면서 수확기인데도 불구하고 말라붙어 있었다. 복구작업을 하는데 만도 몇 년부터 몇 십 년이 걸린다는 이번 피해에 저절로 탄식이 흘러 나왔다. 기상청이 세계기상기구 산하 태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태풍 이름에서 루사를 삭제하고, 앞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하는 걸 보니 정말 루사라는 녀석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그 대단한 녀석은 바다도 피해 가지 않았다.
일터를 잃은 어민들은 넋을 잃고 바닷가에 앉아 누구도 일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얘길 들으니 안타까움 반, 원망 반으로 하늘만 쳐다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었을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평소엔 태풍 보다 더 호탕하시던 분이 축 쳐져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 왔다.

이렇듯 태풍 루사가 바다를 휩쓴 지 일년이 넘었는데도 바다는 아직 루사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휴유증은 바다 뿐 아니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 가장 크게 나타났다. 며칠 전 아빠와 엄마가 밤에 둘이서만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아빠는 비가 많이 내리자 산의 토사가 밀려와서 바다로 유입되고 바다는 결국 진흙화 되어 썩어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또한 많은 쓰레기들이 비로 인해 떠내려가 바다로 유입되면서 바다는 더욱 썩어가게 되었다. 태풍이 오면 바다가 뒤집어 지고 산소공급이 잘되어 바다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하지만 태풍 루사는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큰 해가 되었다며 진흙화 된 바다는 비가 오는 양에 비해 파도가 적게 쳐서 그대로 바다 깊숙이 남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바다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고 어민들의 삶 또한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 하셨다. 엄마는 아빠의 탄식에 한숨만 더 할 뿐이었다.

태풍 루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태풍 매미로 인해 그 피해는 이중 삼중으로 커져만 갔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라더니 매미는 루사의 피해를 한층 강화시켰다.
루사로 인해 바다가 썩어가게 되었다면 매미는 강한 바람으로 바다를 뒤집어 수온에 변화를 주었고 그로 인해 바다의 플랑크톤이 죽어 결국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었다.
루사로 망연자실해 있던 어민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졌고 아빠 또한 그로 인해 얼굴에 주름이 늘어만 갔다. 그 주름살이 하나 하나 늘어갈 때마다 내 마음에 걱정도 하나씩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오늘도 바다에 나가신다.
돌아오시는 모습은 항상 같지만 나가실 때는 막연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실 때면 어깨에 힘이 쭉 빠져 있고 너무 지쳐 보였다.
예전 같으면 "아빠 많이 잡았수?"하고 장난스레 물었을 테지만 아빠의 표정만 보아도 아니, 이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만 들어도 짐작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덜커덩 하고 열리는 현관문 소리는 내 마음까지 덜컹 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어깨가 한뼘씩 쳐지는 소리처럼 들려 왔기 때문이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그 당시에도 어마어마했지만 오히려 바다는 지금 더욱 그 피해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집이 무너지고 물에 잠기는 고통도 크지만 일터를 잃은 상실감 또한 더 없이 클 것이다.
아빠는 오십 평생 일해오신 터전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에 빠지셨다.
그래서 늘 비가 오는 날이면 창 밖을 보시며 하늘을 탓하곤 하시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지도 몇 개월이 지났다.
아빠의 쳐진 어깨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시는 아빠의 모습이다.
아빠의 권유로 간호과에 입학해 건강에 대해서는 예민한 나에게 있어서 아빠의 그런 모습은 견딜 수 없는 모순이었다.
건강이 걱정됨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말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학기에는 서울로 실습을 나가게 되어서 숙소비용이며 생활비며 돈 들어갈 데가 만만치 않은데 얘기를 꺼내기가 미안해서 아직도 미루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긴 하지만 학비에 자취비만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아빠의 어깨에 한 짐 더 올리면 아빠가 주저앉아 버리실 것만 같아 겁이 났다.

아빠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바로 선박검사기준이다.
선박검사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아빠의 마지막 사기마저 떨어져 버렸다.
전 같으면 10만원이면 되는 것이 이제는 100~200정도 들어간다고 하니 어민들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검사는 날로 간소화되는데 반해 선박 검사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아빠의 얼굴도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그래도 아빠는 오늘도 배를 나가신다.
오십이 넘도록 일평생 동안 붙잡고 있었던 삶의 한 줄기를 지금 와서 놓아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하루빨리 바다가 전의 모습으로 복귀되어서 전과 같은 어획량을 기록한다면 아빠의 탄식 한줄기, 아빠의 한숨 한 모금이 줄어 아빠의 어깨는 전의 모습을 찾을 텐데...
바다에 나가시는 아빠의 뒷모습, 그 쳐진 두 어깨를 보며 오늘도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말...
아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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