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재앙 쫓는 삶의 절실한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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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재앙 쫓는 삶의 절실한 수단
  • 남달성
  • 승인 200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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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에 떠오르는 붉은 해를 맞으며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는 소망은 얼마나 순수한가. 그래서 사람들은 동해로 몰려온다. 기차를 타고, 밤새 차를 달려와 하얀 백사장에 주저앉아 파도위로 불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바다, 동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아름답기만한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대부분 그러하듯 팍팍하고 치열하다. 밤바다 수평선 저 멀리 보이는 오징어배 불빛은 생명의 혼처럼 아름답지만, 정작 그 배안에서는 얼마나 치열한 삶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인가. 신새벽 바다에서 돌아온 어부들은 고기를 푸고나면 술을 마신다. 남들은 아침부터 왠 술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하루 일이 끝나고 온몸에 절은 피로를 소주 한잔에 풀어내는 것은 일하는 인간의 권리가 아닌가. 결코 아름답다는 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을 살기 위해 바닷가 사람들은 누구보다 힘들여 싸우고 있다. 이 겨울 동해바닷가 사람들은 거친 바람과 추위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고단한 노동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바다에 목숨을 내놓고 사는 바닷가 사람들은 그래서 굿도 열심히 한다. 그들에게 무당불러 굿하는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위험을 피하고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한 노력의 하나일 따름이다. 모든 일에는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이고, 굿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위험을 당해본 사람이 최후로 선택한 또 다른 삶의 전략인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안된다면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겨내고 싶다는, 또는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삶의 의지가 그들로 하여금 굿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산에서 지금은 갈 수 없는 원산까지 동해안 지역은 동질의 무속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바다를 의지하고 사는 동해안 사람들은 정월이나 삼월, 단오, 또는 시월 상달에 길일을 잡아 별신굿을 해왔다. 별신굿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골매기 서낭을 모시고 주민의 안과태평과 생업의 번창을 위해 하는 굿이다. 하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바닷가에 널찍한 천막을 치고 삼색의 화려한 뱃기들이 하늘높이 꽂혀 바람에 날리는 가운데 굿이 벌어진다. 가설굿당안에는 마을 서낭신의 위패를 모신 가운데 온갖 지화와 용선, 팔각등, 풍성한 제물을 차려놓고 보통 사흘에서 길게는 열흘까지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별신굿은 대대로 세습무들이 맡는다. 세습무들은 신들림의 경험없이 어려서부터 굿판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굿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무가를 부르고 춤추는 굿은 무녀의 몫이다. 양중이라고 부르는 남자들은 타악기를 익혀 무녀가 굿을 할 때 무악을 연주하고 그외 촌극이나 염불을 담당한다.
현재 동해안 지역의 세습무는 세 패로 나뉘어져 있다. 부산의 김석출패와 영해의 송동숙패, 그리고 강릉의 고 신석남패가 그것이다. 김석출은 처와 세명의 딸, 사위 그리고 조카들을 데리고 굿을 하는데 현재로서는 가장 탄탄한 팀이다. 송동숙 역시 처와 딸, 사위, 아들로 그룹을 구성해 경북지방의 별신굿을 맡고 있다. 고 신석남패는 역시 아들, 며느리, 그리고 외손주로 팀을 짜 강릉단오제를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굿을 한다. 그러나 최근 세습무들이 줄어듬에 따라 전통적인 별신굿 전승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세습무의 소멸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19세기 말 계급제도가 사라지면서 무당들이 천민의 지위를 벗어나고자 무업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6.25전쟁과 새마을운동을 겪으면서 사회변천과 함께 무속문화도 변질됐다. 세습무가 사라진 자리에 신들린 무당들이 늘어나면서 현실적인 목적과 이기적인 수단으로의 무속문화가 강세를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무엇보다 큰 요인은 어업 위축 때문이다. 바다에 고기가 없는데 무슨 수로 잡을 것이며 그런 와중에 무슨 희망이 있어 굿을 하겠는가. 주민들의 협동과 꿈을 바탕으로 열리던 굿판이 사라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다에 대한 믿음의 실종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요즘 풍어제라고 부르는 별신굿은 어촌계가 중심이 돼 비용을 마련한다. 원래는 집집마다 걸립해 굿을 해왔었으나 어촌계가 커지면서 비용을 떠맡게 되고 실무도 어촌계원들이 보게 됐다. 그러나 별신굿을 맡을 제관들은 전통에 따라 마을회의를 통해 생기복덕을 맞추어 선출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제물을 장만하는 도가이다. 이외 삼헌관과 축관, 풍어제 추진위원장을 선정한다. 굿하기 일주일전에 서낭당과 제관의 집에 금줄을 치고 금기한다.
굿은 먼저 굿청의 부정을 가신 뒤 서낭님을 모시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관과 주민들은 몹시 긴장하며 서낭당으로 올라간다. 대내림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시선은 50m가 넘는 대나무를 잘라 만든 서낭대를 잡은 대잡이의 손에 집중돼 있다. “명감하신 서낭님네요, 아무 것도 모르는 미련한 인간입네다. 아무쪼록 이 정성드리오니 반가이 보시고 서낭대에 설설히 내리소사.” 드디어 대가 우줄우줄 떨리더니 서낭당에 정성스레 차려놓은 제물을 응감하고는 엎드린 자손들 머리위를 휘 쓸어준다. 신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무녀는 제금을 치면서 올 한해 자손들에게 무슨 문제가 없겠는지 묻는다. 대잡이는 여전히 대를 움켜쥐고 있고 신의 말씀을 기다리는 순간, 당안은 너무도 조용하다. 드디어 무녀의 입을 통해 7, 8월이 무서우니 바다에서 조심하고 차도 조심하라는 말씀이 떨어진다. 비로소 마을은 안도하고 이장은 마을을 대표해 감사의 절을 올린다.
그후부터 본격적인 무당굿이 벌어진다. 가설굿당에 마을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가운데 무당은 조상, 성주등 무속에서 신앙하는 여러 신들을 모신다. 이중 심청굿은 판소리와 거의 똑같이 심청의 일대기를 노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굿을 잘 하면 어부들 눈에 총기를 준다고 해서 인기가 있다. 시준굿은 중과 혼인해 아들 셋을 낳은 당금애기 이야기이고, 손님은 가장 무서운 마마신이며 제면굿은 무당의 조상을 놀리는 굿이다.
무녀들은 허리를 잘록 매고 맵시있게 한복을 입은 다음 쾌자를 걸친다. 장고잡은 양중은 틀림없이 굿하는 무녀의 남편일 것이고 꽹과리를 잡은 양중들이 너댓명 더 앉아있고 징은 아직 어린 총각이 잡는다. 무녀는 굿상을 향해 날아갈 듯 절을 한 다음 천천히 관중석을 향해 선다. 그리고 부채와 손수건 한 장을 들고 춤추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살짝 들어올리는 버선발 맵시있게 돌다가 춤은 조금씩 빨라진다. 좀 더 빨라져 마지막에 두 발을 모아 동동동 거리면 신이 굿청에 막 당도한 느낌이 든다. 마치 신이 무녀와 만난듯한 그 순간 무녀는 춤을 멈추더니, 마침내 한숨을 쉬면서 마이크 앞에 선채로 "서낭님네를 모시자"고 외친다. 쉰듯한, 구수하면서 정감있는 무녀의 굿소리가 들리자 오종종 앉아있던 할머니들의 입이 벌어진다. 굿판은 할머니들의 잔치이기도 하다. 할머니들은 무당이 굿하는 동안 가장 적극적인 신도인 동시에 구경꾼이다. 그들은 무당의 사설을 누구보다 잘 알아듣고 익숙하게 감동한다. 천원짜리 한 장 손에 들고 나와 춤추면서 줄 듯 말 듯 하다가 5분여가 지난 후에야 무당의 가슴에 돈을 꽂는 할머니는 신도 놀리고 자신도 놀 줄 아는 수준높은 당골이자 관객인 것이다. 동네만이 아니라 이웃할머니들도 놀러와 국수며 사탕이며 소주 한잔에 머리고기 안주며 따뜻한 감주등 부녀회원들이 준비한 정성을 한껏 대접받으면서 한 며칠 잘 놀고나면 굿은 끝나는 것이다.
굿은 축제의 마당이라 주민들은 내내 취해있다. 아침부터 무당이 신의 이름을 팔면서 내려주는 음복주에 일단 제관과 남정네들이 취하고 할머니들은 간간이 돌아가는 소주잔에 취하고 어두워지면 종일 일을 한 부녀회원들이 소주 한잔에 신명풀이를 한다. 드디어 굿이 끝나는 날 아침, 어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용왕굿이 벌어진다. 용왕굿은 굿당안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한다. 뱃기들을 해안선과 평행되게 물가에 꽂아놓고 그 앞에서 무녀가 풍어를 비는 굿을 하는 것이다. 술이 덜 깬채 굿상앞에 앉아있는 선주들의 얼굴이 진지하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 무녀는 한없이 풍요로운 축원을 해준다.
“저 물가에 사해팔방 요왕님네만 믿고 해상어업하는 분들은 저 바다를 내다보고 큰 배나 작은 배나(중략)... 이물칸 고물칸 복판칸 채워서 어두어선 가래야 이 가래가 뉘가랜가 사천진리 대동안에 가래로다 청깃발로 띠와주소 홍깃발로 띠와주소...(후략)
축원을 마친 무녀는 용궁을 상징하는 물동이 위에 올라간다. 이를 동이탄다고 하는데 그 위에서 용왕님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사고는 없을지, 고기는 많이 잡힐지 묻고 신의 도움으로 올해도 풍어가 되기를 기원한다. 걱정말라는 용왕님 말 한마디에 뱃사람들은 안도한다. 이제 무녀는 뱃기를 바닷물에 축여 신을 맞이하는 의례를 행한다. 바닷물을 타고 온 용왕이 뱃기위에 올라앉으면 뱃사람들은 깃발을 들고 뛰어가 배에 단다. 이제부터 배는 용왕님이 지켜주시니 어떤 위험속에서도 안전하고 고기도 많이 잡힐 것이다.
적지않은 돈과 품을 들여 이렇게 굿을 한다고 해서 딱히 바다에서 아무 사고 나지않고 고기가 많이 난다고 믿을 수는 없다. 다만 조상들이 해오던 일을 내 대에서 끊을 수 없고 굿을 하면 마음이 든든해서 좋으니 하는 것 뿐이다. 옛법 버리지말고 새법 내지말라지 않았던가. 굳이 신앙이라는 표현을 쓰지않는다 해도 바로 이런 마음이 굿과 함께 마을의 전통을 지켜온 것이다. 드디어 어업인들의 축제가 끝났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그물을 손질해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서낭님 그늘아래 우리 마을은 한 식구라는 느낌이 강해지고 어디에서나 서낭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은 그들의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황루시(교수. 관동대학교 인문학부 미디어국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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