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어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우리나라는 긴 해안선과 많은 섬들을 지니고있다. 이곳에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 온 어업인들은 고기잡이가 삶의 절실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만선(滿船)의 기쁨도 누리지만 흉어(凶漁)에 시달리고 때로는 불귀의 객이 되기도한다. 동해안 별신굿을 비롯, 남해안 별신굿, 위도 띠뱃놀이와 제주도 칠머리당굿 등은 바다라는 험난한 자연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안정과 풍어를 기원하는 공동제의(祭儀)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수산업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조상전래의 풍어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있다. 본지는 이같은 민속놀이를 육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각 지역별 풍어제를 새해 특집으로 엮었다. <편집자 주>

남해안 별신굿

남해안 별신굿은 경남 통영 한산도와 사량도 갈도, 거제 수산과 양화 죽림포마을을 중심으로 벌이는 마을풍어제다. 그러나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있는 곳은 통영시 한산면 죽도마을과 거제시 남부면 수산마을 등 3~4곳에 불과하다. 사량도와 갈도는 8~10년전부터, 양화와 죽림포는 10~15년전부터 풍어제를 갖지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예전보다 수산업환경이 열악해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도시화에 따른 낮은 인식도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통영지방에서는 별신굿과 함께 바다에서 숨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오구새남굿도 펼쳐왔다.

이들 마을에서는 대개의 경우 별신굿을 갖기 3개월전 마을유지들이 모여 1차 회의를 갖고 보름전에는 동회(洞會)를 소집, 굿장모와 이를 도와줄 보조요원 3명을 정한다. 제사비용은 이장을 돕는 반장이 집집마다 돈을 거둬 이장에게 넘겨준다. 이장은 일정금액을 굿장모에게 주어 제물을 준비한다. 이때 값을 깎지 않는 게 철칙으로 돼있다. 죽도마을은 주로 볼락어와 도다리 등 낚시어업이 발달했고 전복과 굴양식등을 생업으로 하고있다. 주민은 70가구에 이르지만 독거노인이 많아 주민수는 2백여명 안팎이다. 수산마을 역시 어업과 양식업이 성행한다.주민수는 00가구 00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50대 이하 젋은이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별신굿 전날 당에서는 유식형태의 당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부터 별신굿을 벌인다. 죽도와 수산마을 당제사는 사제무일행이 도착하면 악기를 치며 먼저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리고 곳곳의 여러 신들을 위해 이제 곧 굿을 펼친다는 들맞이를 한다. 또는 저녁에 당산에 올라가 당맞이굿을 먼저 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무굿과 상관없이 굿장모 또는 제사를 의뢰받은 스님 등이 자시에 조용하게 당제사를 올린다. 근래 수산마을에서는 당제사를 인근스님에게 의뢰, 실시하기도 한다.

남해안지역에서는 본굿당을 주로 마을회관에 꾸민다. 통영지방에서는 대다수 바닷가에 굿당을 꾸미고 각종 지화로 장식하고 제물도 풍성하게 차리지만 거제도 등지에서 갖는 별신굿은 굿당을 집안에 꾸미고 별다른 장식을 하지않는다. 굿당 밖에는 서낭당을 세운다. 별신굿은 오랜 학습과 노력에 따른 세습무로 예능을 전수받아 명맥을 잇고있다. 무악(巫樂)은 피리와 대금 장구, 징 해금 북 등으로 편성된다. 이에따른 장단(채)으로는 불림과 말미, 조너리와 푸너리, 대너리, 제만수 덩덕궁이 올림채 넋노리채 제석노래채 등이 있고 길군악에서 쓰이는 장단과 판굿의 장단 등이 있다.

통영지방에서는 별신굿을 주무할 무녀를 대모라고 부른다. 이들 대모가 굿을 할때 쓰는 무구로 큰머리와 신방울 부채 신칼 손전 등이 있다. 무구들은 옛날부터 윗대 선생님들로부터 대물림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대모들이 굿을 진행할 때 입는 무복은 홍치마와 쾌자 띠 등이 있으며 거리마다 옷을 많이 갈아입지는 않는다. 대모가 큰머리를 하고 별신굿에서 홍치마와 쾌자를 입는 큰 굿으로는 손님풀이와 시왕탄일, 황천문답 등이 있고 오구새남굿에서는 길딲이 칠공주풀이 축문 등이 이에 속한다. 무무(巫舞)는 신칼춤과 신광주리를 갖고 추는 춤, 무목을 갖고 추는 춤 그리고 용선춤 등이 있고 궁중무의 형태를 지닌다.

이러한 구조속에서 남해안 별신굿이 진행된다. 우선 들맞이당산굿을 한다. 마을에 도착한 무당일행 중 잽이들이 청신악을 울리고 대모는 별신대 앞에서 절을 올린다. 마을 수호신과 별신굿의 시작을 알린다. 그 뒤를 이어 굿장모댁 부정굿을 한다. 대모가 무가를 불러 부정을 물리고 천수경을 친다. 또 산신제는 굿장모가 저녁에 큰당에 올라가 밤새워 산신에게 정성을 드린다. 일월맞이굿(칠성굿)은 아침에 대모가 마을 뒷산에 올라가 부정소지를 올리고 칠성본과 액막이 무가 등을 하고 항아리 속에 옷을 바친다.

이어지는 골맥이굿은 삼한대를 앞세우고 일행이 작은 당으로 가 큰 나무아래에서 대모와 악사가 매구굿을 논다. 곧 밭에 세워둔 별신대에 가서 매구놀이를 하고 또 우물굿을 치른다. 용왕굿은 마을 바닷가에서 대모가 큰머리를 하고 징으로 삼십삼천을 치면서 사방에 절한뒤 무가를 부른다. 그리고 공사가 따른다. 수중에서 불귀의 객이 된 원혼과 바다의 잡귀 잡신을 달래주고 용왕님께 바다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본청으로 오라고 말한다. 부정굿은 본격적으로 굿을 할 본청으로 가 굿당의 부정을 가신다. 내용은 굿장모댁 부정굿과 같다. 이때 각 가정에서 조상상을 차려 내온다. 여기에서 가망굿과 제석굿 서낭굿과 군웅굿이 펼쳐진다.

다음 큰굿은 손굿과 손님풀이 고음역대 황천문답 축문 환생탄일 시왕탄일로 이어진다. 손굿은 일명 지동굿이라고 하는데 마을의 동태부신령을 위무하는 굿이다. 손님풀이는 마마신인 손님을 맞아 위해주고 명과 복을 기원한다. 장고에 손전대를 꽂고 대모 혼자 논다. 손님풀이는 장단없이 자유리듬으로 무가를 부른다. 이어 대잡이굿을 놀기도한다. 고금역대는 영웅호걸과 절세미인도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인생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망제와 원혼의 왕생극락을 빌며 산사람은 탐욕을 삼가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황천문답은 망재가 황천에 가 부처님전에 설법을 듣고 열시왕등 앞에서 생전의 선행과 공덕을 고한뒤 오구새남굿을 받아 극락천도된다는 내용의 설법이 구송된다. 축문은 망재에 대한 유교식 제사법을 차례로 기록한 것을 읽는다. 환생탄일은 시왕전에 망재의 인간환생을 축원한다. 생전의 공덕외에 가족들이 굿해준 공덕으로 이승에 환생하게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시왕탄일은 시왕을 차례로 염불로 모시고 지옥을 면해 가라는 굿이다. 대신풀이는 남해안 별신굿의 타계한 윗대 선생들을 위로하는 굿이다. 군웅굿은 무신(武神)의 군웅장수를 위하는 거리이다.
마지막의 거리굿은 조상상을 해변가에 놓고 삼한대를 세운뒤 경을 읊고 대를 잡는다. 육갑풀이와 지옥문 무의 맘자심이 따르고 바닷가로 가서 조금씩 뗀 음식을 바다에 던진다. 그리고 삼한대 매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고깃배에 올라 풍어매구를 치기도 한다. 이로써 나흘간의 별신굿이 끝난다. 이렇듯 제의진행에 따른 별신굿 음악담당 악사들은 무업(巫業)에 종사하던 후손들로서 열심히 별신굿 전승에 이바지하고있다. 별신굿이 열리면 악사 6~7명이 동행한다.

굿 자체의 흥겨움도 많고 연희성과 관중을 진지한 분위기로 이끄는 요소를 지니고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거리마다 시작과 끝에 젓대 독주로 청신악과 송신악을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통영과 거제지역에서 별신굿을 할 경우 대모(승방) 서너명이 나와 양손에 도싯대(대나무)를 들고 60갑자 사설을 엮어 자진 허튼 가락에 맞춰 춤추며 흥겹게 진행한다. 현재 통영에는 남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정영만․47)씨를 비롯한 회원 34명과 전수희망자 20여명이 맥을 잇고있다. 정씨는 별신굿의 악기와 구음 지화 등 별신굿에 대한 모두를 구현하고있다.

특히 피리의 시나우(시나위)가락과 구음이 특출하다. 더불어 공대원(공대원.00)씨가 장구와 징, 승방으로 김현숙(金玄淑․38)씨 등 2명이 전수교육보조자로 일하고있다. 이밖에도 김현식(김현식․00)씨가 피리와 북, 공성재(공성재․00)씨가 징과 괭과리 등을 전수받아 활동하고있다. 남해안 별신굿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통영지방에서 쓰이고 있는 무구들이 2백~3백년 전의 것으로 감안한다면 조선시대부터 남해안 별신굿이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날 통영과 거제지역의 주무(대모) 정모연(정모연. 작고)씨는 거제시 거제읍에서 태어나 18나이에 통영 한산도에서 어업을 하던 동갑내기 김상문씨한테 시집을 갔으나 31세때 낲편이 바다에서 숨지자 10년뒤 19세 연상인 김성오씨와 재혼, 평생 이길을 걸어왔다.

정모연씨는 부모가 모두 세습무출신이고 첫 남편 김상문씨는 굿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부모도 역시 세습무였다. 또 두 번째 남편 김성오씨는 젓대와 가야금의 명수인 양중(兩中․ 악사들의 현지명)으로 굿판에서 서로 알게돼 결혼했다. 정씨는 김성오씨의 외가쪽으로 팔촌간이었던 김상조씨와 김윤희씨 남매로부터 거제에 있던 무당을 학습하던 신청에서 16세때부터 무가 사설과 무굿 제사에 필요한 기예를 배우기 시작, 21세때 완전히 무굿기능을 전수받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망하기까지 60년에 가까운 무굿 경력을 지닌 이 지역 별신굿의 1인자였다.

별신굿을 할때 회원 34명과 함께 전수자 20여명 모두가 참여한다. 이렇게 정성들여 벌이는 별신굿대가가 1백50만~2백만원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전수희망자가 별로 없다. 현재 무형문화재 제 82호로 지정된 남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씨가 월 90만원, 승방 김현숙씨와 공대원씨가 월 35만원의 정부지원을 받고있다. 물론 이것 외에도 1년에 많으면 50여차례, 적으면 30회정도 초청공연이 있다. 이때 공연비는 대략 2백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같은 수입으로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부업도 한정돼 있다. “이런 현실에서 볼때 별신굿에 온몸을 내던질만한 정열을 불 태울 수 없습니다. 정녕 정부가 어촌사회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남해안 별신굿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두배이상 지원해야 합니다” 승방 김현숙씨의 바람이다. 회원들은 꺼져가는 남해안 별신굿을 되살리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