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 풍년 예언따라 주민들 울고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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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풍년 예언따라 주민들 울고 웃고
  • 하주용
  • 승인 200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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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 칠머리당굿은 예로부터 행해져온 영등굿의 일종으로 영등신(神)·영등대왕을 대상으로 하는 무속행사를 일컫는다. 굿은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 증식과 어업 번창을 영등신에게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뤄지며 각종 제물을 차려놓은 제단에서 신을 불러들이는 초감제부터 시작된다. 이어 용왕과 영등신이 내왕할 길을 닦아 맞아들이는 용왕맞이굿, 소라 미역 전복 등의 씨앗을 바다에 뿌려 증식시킨다는 씨드림굿, 뿌린 씨가 잘 자라서 풍년이 들겠는가를 점치는 씨점굿, 끝으로 짚으로 만든 모조선에 돛을 달아 신을 떠나보내는 방선(放船)굿이 진행된다.

□ 칠머리당과 영등굿

제주 칠머리당굿은 제주시 건입동 지역의 본향당(本鄕堂)굿을 뜻한다.
본향당이란 마을 전체를 수호하는 당신(堂神)을 모신 곳이다. 건입동 본향당을 칠머리당이라 부르는 것은 지명에서 유래됐다. 이 당은 건입동의 동쪽 제주항과 사라봉 중간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데 이곳의 지명이 속칭 칠머리인 것이다. 그래서 본향당굿을 칠머리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칠머리당은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용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 두신이 지키고 있다. 이 두 신은 부부 신으로 남편인 도원수감찰지방관은 마을 전체의 토지와 주민의 생사, 호적 등 생활 전반을, 부인인 용왕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작업, 외국에 나간 주민들을 수호해 준다고 믿고있다. 따라서 칠머리당굿은 의당 이 본향당신을 위한 굿이 돼야 하는 것이다. 제주시 건입동에서는 예전부터 이 칠머리당에서 1년에 두 번 굿을 한다. 영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인데, 영등환영제는 영등신을 맞아들이는 굿이고, 영등송별제는 영등신을 송별하는 굿이다. 그러나 둘 다 통상 영등굿이라 부르고 있다.
영둥신이란 어부나 해녀의 해상안전과 생업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건입동에서는 본향당인 칠머리당에서 주신인 영등신을 위한 굿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칠머리당굿 전체를 영등신에게만 바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본향당신을 위하는 부분도 있지만 굿의 대부분은 영등신에게 어부와 해녀의 해상안전과 어업의 풍요를 비는 굿으로 짜여져 있다. 따라서 본향당신에 대한 굿은 일부 곁들이는 것뿐이고 실은 영등굿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본향당굿이 본향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등신을 위한 굿이 된 것은 건입동의 어촌적 성격에 기인하고 있다. 건입동은 지금은 제주시 중심시가를 이루고 있는 소위 5개 시내동의 하나이지만 예전에는 제주성 동쪽 바깥의 조그마한 어촌이었다. 현재 제주시 중심은 제주목(濟州牧)의 성 안쪽이었고 이 성 동문쪽을 가로질러 산지천이 흘렀는데 그 하구가 포구였던 것이다. 이 포구를 건들개(혹은 건들포)라 했는데 이 근처에 어업인들이 부락을 형성, 어로와 해녀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었다. 이 부락이 지금의 건입동이다. 그리고 당시 포구는 현재 제주의 관문인 제주항이 됐다. 1904년 통계자료인 제주목삼군(濟州牧三郡) 호구가간총책(戶口家間總冊)에 따르면 당시 건입리에는 1백98가구 4백81명이 살고 있을 정도로 아주 빈한한 어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본향당굿이 이들의 해상생활과 생업의 풍요를 주는 영등신에 대한 영등굿으로 치러게 된 것이다. 또 이 마을이 오늘날 항구도시로 변하긴 했지만 예전 어업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남아있어 영등굿이 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영등굿의 유래

제주도는 음력 2월이 되면 곳곳에서 영등굿을 한다. 칠머리당굿은 이 중 대표적인 영등굿이다. 영등굿을 할 때 심방들은 영등신이 강남천자국에서 왔다고 한다. 강남천자국은 중국으로 영등달 제주도에 서북 계절풍이 불어오는 방향이다. 영등신은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 영등호장, 영등우장, 영등별감, 영등좌수 등 모두 일곱 신위(神位)로 돼 있다. 음력 2월 영등달이 들면 이 신들은 강남천자국에서 제주 섬에 산 구경 물 구경하러 오는데 맨 먼저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라는 포구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라산에 올라가 오백장군에게 현신 문안을 하고 어승생 단골머리로 소렴당과 산방굴을 경유, 도리디끗(교래리)까지 돌면서 복숭아꽃 동백꽃 구경을 하고 다닌다. 세경 너른 땅(경작지)에는 열두신만곡(新萬穀)씨를 뿌려주고, 갯가 연변에는 우미, 청각, 편포, 소라, 전복, 미역 등을 많이 자라게 하는 해초 씨를 뿌려준다. 이 신이 돌아가는 시기는 영등송별요에는 “각 리 각 리 마을 마을마다 지부쪄 두고(씨를 뿌려 두고) 산 구경 물 구경 해 가지고 소섬(우도) 진질깍에서 송별해서 평안바당으로, 강남천자국으로 지놓아갑니다."하는 것으로 보아 영등 2월 보름날 우도면으로 해서 제주 섬을 떠나는 것으로 돼 있다. 지금까지 자료를 종합해 보면 영등신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환절기에 찾아오는 외래신으로 서북 계절풍과 함께 마지막 꽃샘추위를 몰고 오는 풍신이자 농경신이다.
제주도 영등굿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영등굿에 대한 기록은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제28권 제주목 풍속조에도 나타나 있다.

"2월 초하루에 귀덕(歸德), 금녕(金寧) 등지에서는 나뭇대 열 두 개를 세워 신을 맞이해 제사를 지낸다. 애월(涯月)에 사는 사람들은 떼 모양을 말머리와 같게 만들어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躍馬戱)를 해서 신을 즐겁게 했다. 보름이 돼야 끝내니 이를 연등(然燈)이라 한다. 이 달에는 승선을 금한다"

이 기록을 오늘날의 영등굿과 비교하면 그 제일(祭日)이 2월1일에서 15일까지로 현재 건입동에서 2월15일 영등송별제를 하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또 이 달에 승선을 금하는 것은 오늘날 영등송별제를 지내기 전까지 외출하지 않는 관습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 행사가 성행했던 곳이 한림읍 귀덕리, 구좌읍 금녕리, 애월읍 애월리 등 모두 어촌이란 점이 현재 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영등굿이 분포돼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연등(然燈)은 영등굿을 뜻하는 것이며 이 굿은 조선조 이전부터 제주어촌의 부락제로서 성행했었음을 알 수 있다.
연등에 대한 기록은 그 이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탐라지(耽羅志)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나지만 모두 동국여지승람을 옮겨 쓴 것들이어서 그간의 변화된 모습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지금의 영등신에 대한 전승과 영등굿의 모습, 영등굿의 분포 등은 위 기록과 대비, 그 신앙과 변화된 모습을 헤아려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민간에 전승된 영등굿의 내용을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신명(神名)은 영등 또는 영등할망이라고 하고, 제명(제명)은 지역에 따라 영등맞이, 영등손맞이, 영등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지만 영등굿이라는 이름이 일반화돼 있다. △영등할망은 2월 초하루에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박이섬에서 제주도로 들어와 섬의 바닷가를 돌면서 미역씨, 소라씨, 천초(우뭇가사리)씨 등을 뿌려줘 해녀들의 생업에 풍요를 주고 15일에 우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 △2월이 되면 바닷가의 보말(작은 고둥)이 다 속이 비는데 이는 영등할망이 돌아다니면서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영등이 들어오는 날(2월1일) 날씨가 추우면 "옷 좋은 영등이 왔다"하고, 비가 오면 "우장 쓴 영등이 왔다" 한다. △이 기간에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말아야 하고 빨래도 해서는 안된다. 만일 빨래를 해 풀을 먹이면 집에 구더기가 인다. △영등굿을 할 때 심방(무당)의 "미역 풍년든다", "조기 풍년든다" 등의 예언에 따라 풍흉(豊凶)이 달라지며, 영등신을 보낼 때는 짚으로 작은 배를 만들어 갖가지 제물을 싣고 바다에 띄워 환송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등신은 할망(할머니의 제주방언)이라 불리우는 여신이며,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박이섬에서 왔다가 돌아가는 내방신(來訪神)이다. 풍우(風雨) 등 기상과 관계 깊은 신이고 해녀나 어부의 생업 및 농업에도 관계 깊은 신이란 걸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이 신은 제주도 외 우리나라 남부지방 일부에서도 분포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 신명은 영등할만네, 영등할맘, 열등할마니, 영등할마시, 영등바람, 풍신할만네, 영등마고할마니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는데 주로 풍신(風神)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이 신은 어촌의 경우 어업과 관계 깊은 신으로 변모된 듯하다. 그래서 제주도의 경우 해상안전, 풍어,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 증식을 보호하는 신으로 믿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제주의 영등굿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어촌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하는 데가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일부 어촌에만 남아 있다.
이런 사실은 원래 영등굿이 사실은 어촌의 굿이었지만 점차 농촌까지 번져 나갔다가 다시 원 모습대로 어촌으로 돌아와 어촌부락제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영등굿은 조선조 이전부터, 어부와 해녀들을 수호하는 풍어부락제(豊漁部落祭)로 성대히 벌여왔고 이것이 다시 농촌으로까지 세력을 뻗쳐 나갔다가 원 모습대로 어촌의 풍어부락제로 되돌아온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칠머리당굿도 이 같은 풍어부락제의 잔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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