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 고급화 대중화에 노력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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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고급화 대중화에 노력할 터
  • 이지연
  • 승인 2008.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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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는 제 삶의 전부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것 같지만 과메기가 국내를 뛰어넘어 전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과메기에 죽고 사는 남자가 있다. 경북 영덕군 강구 토박이 서원명(徐元明·45) (주)일성수산 대표이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선친의 과메기 생산기술을 전수받아 20년간 딴 눈 팔지않고 줄곧 일성수산을 운영하면서 과메기를 생산해오고 있다. 지난 달 25일 그는 ‘제11회 농림수산과학기술대전’에서 과메기 기술개발과 해외 수출 현실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했다. 이는 수산과학기술분야 특히 수산물가공분야에서 유일하게 수상해 그의 업적이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과메기 수출조건으로 미국 레지토사가 지원한 5백만 달러와 서씨 자신이 마련한 80억 원 등 모두 1백30억 원을 쏟아 과메기특구지역인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에 최근 (주)구룡촌이라는 독립법인을 설립함과 동시에 생산공장을 건립했다. 과메기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서 대표이사를 만나 과메기에 내건 그의 삶의 긴 여정을 들어봤다.

평소 수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신의 미래는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향 영덕은 서 대표이사에게 어머니 품처럼 익숙한 곳이었다. 유년기부터 이미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노하우가 온 몸에 저려있었다. 때문에 영덕의 높은 지명도를 제대로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게다가 수산물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던 그로선 바다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친구들이 대부분 외지로 떠났지만 그는 바다를 향한 자신의 꿈을 차곡차곡 설계했다. 21살 때 오로지 도전정신을 키워나가겟다는 일념 하나로 원양어선에 승선, 대서양에서 참치잡이에 선봉장이 됐다. 그러나 객지생활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가족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5년 만에 귀국한 그는 1988년 8월 25살의 나이로 과메기 명태 양미리 등을 원료로 가공과 유통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일성수산을 설립했다.

시작 초기엔 연간 1억원 안팎의 소득을 올렸을 정도로 순조로웠다. 이 사업을 바탕으로 1995년 9월엔 7.93t급 어선을 구입해 대게와 오징어 등을 잡는 어선어업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어려움이 닥쳐왔다. 경쟁업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매출은 정체상태에 머물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큰 사고도 일어났다. 1999년 3월 동해안에서 조업중이던 서씨의 어선이 침몰하면서 선원 5명이 실종된 것이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 속에 모든 것을 단념하고 달아나고 싶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가산을 정리하고 사채를 빌려 실종선원 가족들에 대한 의 피해를 보상했다. 바다 때문에 큰 빚까지 지게 됐으나 그는 바다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금 새 희망찾기에 나섰다. 새벽부터 밤 늦도록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오징어와 대게잡이철을 맞아 번갈아 배를 바꿔 탔다. 잠이라곤 하루 2~3시간 밖에 잘 수 없었다.

배 탄 대가로 몇푼 저축한 돈으로 1999년 10월 꽁치와 청어를 건조해 판매하는 과메기 가공사업에 다시 뛰어들었다. 일반적으로 과메기는 겨울철에만 먹는 것으로 알고 있던 때 사시사철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키토산 훈제 과메기통조림을 수작업으로 생산, 판매했다. 그만큼 유통기한에 구애받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기대 이상의 큰 소득을 올려주었다. 사업 첫해에 5억 원의 매출을 올려 과메기 가공사업 1년 6개월만에 어선침몰 사고로 진 빚까지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이후 과메기 가공사업은 날로 번창해 갔다. 2001년 들어서는 사업규모가 늘어나자 판매만 전담하는 일성상사를 별도로 세웠다. 취급품목은 오징어, 멸치, 미역 등이었다. 또 2003년 무렵부터는 과메기 자체의 비린내를 제거하고 다양한 기능성 과메기를 생산하고 생산라인도 현대화 했다.

키토산액에 숙성시킨 과메기를 비롯해 한방 약재를 활용한 한방 과메기도 개발했다. 그 결과 매출액이 30% 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서씨는 땀 흘려 개발한 수산물 제조기술과 상표가 너무 쉽게 도용되고 있는데다 자사제품인 키토산 등 기능성 과메기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2003년 2월 키토산, 한방 및 훈제 과메기에 대한 특허 10개를 출원, 획득했다. 현재 서씨는 1백8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수산물가공회사를 운영하면서 연간 1백2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는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늘림으로써 보다 좋은 제품을 싼 값으로 공급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이렇듯 그의 도전은 미국 상공인들까지 감동했다. 포항시가 지난해 11월 경북도 수목원에서 한상(韓商)대회 참가를 위해 고국을 방문한 미국 한인 상공인을 대상으로 과메기시식회를 가졌다. 서 대표는 과메기를 해외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과메기 우수성을 적극 홍보했다. 이날 초청을 받은 남문기 로스앤젤레스(LA) 한인상공인회장을 비롯 1백20명의 대회 참가자들이 제철을 만난 과메기의 깊은 맛에 감탄했다. 이날 시식회의 성공으로 이튿날 (주)구룡촌을 찾은 미국 레지토사 이복수 대표는 과메기 특화사업 5백만 달러 상당의 투자의향서를 체결하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과메기 2억7천만 원어치를 지난 3월 미국으로 내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 대표는 미국의 식품의약청(FDA)이 인정할 수 있는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획득을 위해 실내 과메기 생산 전 공정을 갖추기 위해 과메기특구지역인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 부지 2천4백80평 건평 6백평의 공장을 준공, 오는 15일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서대표이사는 노력하는 경영자다. 1999년 2월 안동대 경영대학원 고급관리자 과정을 수료한 것을 비롯, 2000년 0월 과메기 등 수산가공품 생산방법을 개선하고 인터넷 직거래 사업을 펼치는 등 지속적으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피와 땀의 결정체로 2005년 0월 종전 해양수산부 시절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얼마전에는 농림수산과학기술 특히 수산물 가공분야에서 수산인으로 유일하게 상을 받아 그의 업적이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과메기 생산 등 수산물 가공을 천직으로 여기고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과메기가 식품으로서의 안전성에 미흡할 수 도 있다" 며 "과메기의 고급화 및 대중화에 앞장서는 등 국내 수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식품개발을 통해 한국을 해양대국으로 키워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인생에는 바다와 과메기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업체도 가능하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애착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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