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차별화로 국민식품 만들 터...정강성 새꼬막 양식어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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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차별화로 국민식품 만들 터...정강성 새꼬막 양식어업인
  • 김용진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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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동단(동단)의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자리잡은 여자만은 천혜의 꼬막 양식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곳은 남북의 길이가 약 30km, 동서길이 22km 고흥군과 보성군 순천시 여수시 등과 접하고 있는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간석지가 발달해 옛날에는 꼬막 서식지로 명성을 날렸지만 1970년대 들어서는 양식단지로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해역에 형성된 꼬막면허어업권은 대략 3천ha. 하루 평균 30t씩 연간 1만t의 꼬막을 생산, 내수는 물론 수출총아로 각광받고있다. 이는 전국 생산량의 70%에 이른다. 정강성(丁康聲·50)씨가 수산업에 뛰어든지도 어언 30년 전의 일. 1975년 초 새꼬막과 인연을 맺어 품종을 개량하고 채취기와 상품선별기 등을 개발하는 등 정말 한 눈 팔지않고 오로지 꼬막과 반생을 살아온 산 증인이기도 하다.

수산업은 관심만큼 성공한다.
그러나 이처럼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채 현안으로 남아있는 게 종패의 안정적 확보와 면허면적 확대 및 국내산과 수입산을 섞어 내다파는 유통의 잘못된 관행 등이라고 그는 말한다. 인문계 고교를 나온 그는 수산업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다만 수산업에 발을 들여 놓게 된 동기는 여수시 율촌이라는 꼬막산지에 출생한 것과 평소 수산업은 큰 돈이 될 것이라는 무한한 기대 때문이었다. 정씨는 여느 새꼬막 양식업자와는 남다르다. 꼬막 생산에 필요한 채묘방법 개선과 채취기 선별기 판매 등을 비롯, 수출에 이르기까지 직접 그가 개척했거나 개선했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꼬막 생산의 적지 여자만을 가꾸게 됐고 날로 오염돼가는 이 해역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누구 못지않게 갖게 된 것이다.

꼬막은 정약전(丁若銓)이 쓴 우리라나 최초 수산관련 문헌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꼬막(고막)이라 불렀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괴합(魁蛤) 와옥자(瓦屋子) 감(甘)등이라고 일컬었다. 꼬막종류에는 꼬막(참고막)과 피조개 그리고 새꼬막 등 3종류가 있다. 이중 참꼬막은 제사상에 오른다 해서 제사꼬막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으나 새꼬막은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한다 해서 ‘똥꼬막’이라고 불리는 등 그야말로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았다. 꼬막을 구분하는 방법은 꼬막(참꼬막)은 방사륵(골)이 보통 17~19개이며 피조개는 36~41개 새꼬막은 31~36개 등으로 껍질의 골을 세어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새꼬막에 대한 대접은 종전과 크게 다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참꼬막은 kg당 3천~4천 원 정도에 팔렸으나 새꼬막은 5백~1천 원에 불과, 무려 3~6배까지 차이가 났으나 최근엔 참꼬막과 새꼬막 값이 3천 원대로 거의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자연 새꼬막 양식어업인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씨의 말이다.

양식업의 성공은 자연과 노력의 결과
새꼬막 양식적지는 주로 내해 조간대(潮間帶)에서 수심 10m 사이의 갯벌 밑 바닥이다. 정씨는 새꼬막 양식업의 성패는 양질의 채묘 성공과 어장 위치 그리고 어장관리와 함께 적정 판매가격 형섣 등 네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가운데서도 채묘와 어장 위치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덧붙인다. 여자만의 새꼬막 양식사업은 1960년대만 해도 양식기술이 없어 갯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낮았다. 그러나 지난 1974년 초 정씨가 새꼬막양식에 온몸을 던지기 1년전부터 갯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남도가 여자만 갯벌을 이용, 새꼬막양식면허권을 발급하면서 새로운 소득원으로 급부상하자 많은 지역주민들이 여기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새꼬막양식이 첫 시작된 지난 1972년에는 전래의 기술이 없어 일부 어업인들이 동백나무와 소나무 등을 섶으로 이용, 자연 채묘에 의존했으나 1975년경부터 어망을 활용해 자연채묘 에 나섰고 1978년부터서는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양식도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 새꼬막 개인 양식면허규모는 최대 30ha로 묶여 있다. 새꼬막이 돈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너나 할 것없이 양식면허권을 따기 위해 온갖 잡음이 일자 전남도가 개인의 경우 최대 30ha이상 면허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종패는 ha당 대략 1~1.5t(가장 1.5㎝) 뿌린다. 따라서 ha당 생산량은 종패를 어장에 뿌린 3년후 보통 3㎝ 22~25g짜리 9t 정도를 수확한다. 그러나 수확기에 새꼬막도둑이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어장관리가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하고 어장위치가 좋아야 할뿐 아니라 양식기술 등 세가지를 구비해야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다고 그는 귀띔한다. 최근 여자만 해역 내 새꼬막 양식장들은 어장 노후화로 생산량이 예전 같지 않다.

이 때문에 정씨는 간조때 갯벌이 드러나 청둥오리 등 조류들이 날아들어 종패를 쪼아 먹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연구와 만조 때 천적 불가사리 등 해적생물을 퇴치하기 위해 발을 설치하는 등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또 채취선에 자신이 고안한 형망을 설치, 해적생물을 잡아내는 등 남다른 열정을 쏟음으로써 평균 생산량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특히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1996년초 건축현장에서 모래와 자갈을 선별하는 기계를 모방해 손수 새꼬막선별기를 제작하는 등 영일(영일)이 없을 정도로 생산성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패각처리 문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촌계원과 함께 정부지원을 받아 패각처리공장을 건립, 패각을 원료로 의약품과 석회비료를 생산, 경개선에 크게 일조하기도. 하지만 현행 개인한테 발급하는 최대 면허면적 30ha로는 안정적 생산을 할 수 없을뿐더러 가격폭등을 막을 수 없어 적어도 면허면적을 60ha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꼬막 생산 확대와 유통의 개발

생산량 증대는 양식어업인들의 소득과 정비례한다. 새꼬막은 한때 과잉생산에 따라 개인면허를 최대한 억제했다. 그 결과 3~4년 전부터 물량이 급격이 감소하는 양상이 벌어져 최근에는 종전 kg당 5백~원에 머물던 새꼬막이 3천 원까지 뛰는 등 가격이상현상을 빚고있는 실정이다. 생산량 감소는 어장 환경 악화와 적조 태풍 등 갖가지 요인을 들 수 있지만 어장 이 가운데 어장노후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따라서 값이 오름에 따라 반입된 본산이 내산과 섞여 시중에 유통되는 등 혼선을 부추기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일본산 새꼬막의 국내 진출은 생산업계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생산자들은 일본산을 어장에 뿌려 다시 국내산으로 시중에 출하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씨는 양식장에서 채취한 꼬막을 선별해 6kg 짜리와 12kg 짜리 등의 포대에 넣어 직접 서울 가락동시장과 노량진수산시장에 출하한다. 또 일부 물량은 미국에 직수출하는 등 생산과 상품선별을 통해 연간 3백t 이상을 내다판다. 따라서 국내 양질의 새꼬막을 지키고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국내산의 우수한 품질을 차병화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국내산은 일본산과 달리 고기 살은 노랗고 달며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필수아미노산 철분과 각종 무기질이 다량 함유돼있어 어른에게는 조혈강장제가 역할을 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성장발육과 핵산이 많아 두뇌발달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먹을거리를 국민적 식품으로 자리 잡아 꾸준히 먹을 수 있게 공급하는 것이 양식업자로서의 사명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울러 어업인들은 새꼬막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힘써는데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기도. 또 정씨는 생산은 어업인, 유통은 수협이 맡는 것이 국내산 새꼬막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이라며 업종별 꼬막조합을 설립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애써 강조한다.

수산업경영인으로서 자부심

정씨는 지난 1984년 3월 어업인후계자로 선정됐다. 또 1995년 0월~1997년 0월까지 한수연여수시연합회장과 1997년0월 전남도 연합회장 1997년 0월~2001년0월까지 제7대 한수연중앙연합회 회장직을 맡았었다. 정씨의 이러한 활동은 어업인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전국 63개 임해 시군에 조직망을 갖고있는 수산업경영인단체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씨는 요즘 수산업경영인 단체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자신의 말이 자칫 후배들에 대한 간섭이 될까봐 노파심에서 스스로 말문을 닫는다고 말한다. 다만 조직 개개인의 인식의 차이가 있다 해도 이 단체의 성장과 밑거름이 된 선배들의 참뜻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모름지기 수산업경영인들은 어촌현장에서 빗나간 공직자들을 질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노고도 인정하면서 정부와 어업인 어업인단체 등이 함께 합심해 수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소임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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