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과 전통어업 과도기의 어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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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과 전통어업 과도기의 어선의 가치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1.09.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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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김경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어선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질문을 곱씹으며, 새벽녘 선왕신(바다 밭 수호신인 요왕신과 함께 선원들을 보호하는 선박의 수호신)에게 술을 바치는 제향을 치르고 고기잡이에 나서는 선원들을 눈앞에 그려본다. 쉰 살의 어부가 선장인 이 어선은, 과거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장비도 현대화됐지만, 조류로 그물을 펼치고 물고기를 유인하는 안강망 방식은 옛날 그대로다. 투망 시기가 잘못되면 그물이 물속에서 얽히거나 추진기(스크루)에 걸릴 수도 있어 ‘나 홀로 조업’은 금물이다. 

어선은 특정 해역에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조업을 하는 어업인들의 ‘움직이는 일터’이자,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의 공간’에 가깝다. 실제 국내 등록 어선은 약 6만6000여 척으로, 수상레저기구를 제외한 전체 선박의 88%에 달한다. 지난 5년 간 국내 해양사고 발생 건수에서 어선사고는 68.2%를 차지하며, 기관고장과 부유물 감김 등에 의한 전복과 침몰사고가 가장 높은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어선 노후화와 어선원 고령화로 인한 인적과실이 대표적 원인이지만, 어선 고유의 낮은 안전성과 열악한 조업현실이 뒤엉켜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안전 항해는 선박의 건조, 검사, 선원 교육 및 안전운항을 위한 항로 확보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중에서 우리 공단은 선박검사, 여객선 운항관리 및 해양교통안전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어선 해양사고를 줄이기 위한 지금까지의 대다수 정책마련과 연구개발은 대형 선박 위주였다는 점이다. 

이에 공단은, 지난해 7월 1일 기술연구원 소속의 어선정책연구실을 신설해 현재 △AI(인공지능) 기반의 안전 강화형 어선 개발 기획연구 △수준 높은 인적 자원 관리와 고품질 어선 건조를 유도하기 위한 어선건조진흥단지 구축 연구 △조업 중 어선원의 인명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개선 연구 △친환경 전기추진 어선 개발 연구 등 어선 안전과 성능개선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부를 포함해 학계와 산업계, 연구단체와 함께 ‘어선안전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고, ‘표준어선형 기준’을 마련해 지난 연말 시행했다. 표준어선형 기준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어선의 안전‧복지 공간을 허가톤수로 규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가톤수의 45% 이내에서 선원실과 조리실, 화장실 등 안전‧복지공간을 갑판 상부로 증설할 수 있게 해 어선원의 복지를 높였고, 복원성 및 만재흘수선 지정 등 안전성 검사도 받도록 했다. 그 덕분에 시작 단계임에도 9.77톤급 어선에 대한 복원성이 약 32% 향상된 것이 확인됐다.

공단은 사람의 실수를 기술적으로 보완해 해양사고를 예방하는 방안, 이른바 ‘능동적인 안전(Active Safety)’ 기술 개발과 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단의 ‘바다내비게이션’과 ‘무인 기관실 자동소화장치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먼저, 해수부와 공단은 세계 최초로 한국형 ‘바다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시행중이다. 선박 운항자는 바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안전한 항로 정보와 실시간 전자해도 자동 업데이트, 기상정보와 충돌‧좌초 위험 음성안내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단말기로 통신할 수 있고, 위치 발신 기능은 물론, 입출항도 자동신고 된다. 공단은 올 초부터 여객선, 예인선 등 각종 선박에 바다 내비게이션 단말기 설치를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선박 1860척이 단말기를 설치했다. 또한, 3톤 미만 선박도 바다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용 앱을 보급 중이다. 

최근 공단은 ‘선박화재 조기 진압을 위한 소화시스템’을 개발해 특허청의 특허도 받았다. 이 시스템은 어선 특성상 선원이 상주하지 않는 기관실의 화재 사고를 초기에 감지, 진압하기 위한 것으로 화재 감지 및 대응 방식뿐만 아니라, 소화기 내부의 충전 약재 등도 개선해 화재 조기 진화 능력을 강화했다. 공단은 올해 6월부터 10톤 이상 어선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7년 간 어선 안전사고 발생 선박 중 재사고율이 높은 어선 100척을 선정해 각종 안전물품과 현장 안전 매뉴얼도 보급하는 등 어업 종사자의 안전의식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

다시 이 글의 첫 질문을 되짚어 본다. 어선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만선의 꿈을 품고 바다로 향하는 어업인들의 안전한 항해가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 우리 공단은 내일도 어김없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연구와 기술력을 닦는 것은 물론 어선 안전을 둘러싼 모든 이들의 동참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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