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대형트롤 허용, 누구를 위한 조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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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대형트롤 허용, 누구를 위한 조치인가?
  • 탁희업 기자
  • 승인 2021.08.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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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를 비롯한 동해안 어업인들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경북 후포와 포항, 구룡포, 강원도 어업인들도 격앙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동해안 어업인들과 어촌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것은 대형트롤 어선의 동해 진출에 대해 해양수산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면서부터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2일 울릉도에서 어업인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가졌다. 회의 내용은 부산지역 대형트롤 어선들의 대화퇴어장 오징어 시험조업이었다.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으로 오징어 자원이 줄어들면서 우리 어선들이 우리 자원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1965년 한일 어업협정 당시 부속조치로 1976년부터 수산청 훈령 제256호로 제정된 것이 ‘대형트롤의 동경 128도 이동 조업 금지’다. 이 조치는 45년 이상 동해안의 수산자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으며 동해안 어업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주는 마지노선으로 지켜져왔다.

그런 반면 대형트롤업계는 여건이나 상황이 변할 때마다 조업금지 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한일 어업협정이 바뀌거나 정권이 교체될 때나, 장관이 바뀔 때, 조업이 부진하거나 업계 요구사항이 높을 때마다 해제를 강력하게 요청해왔다. 심지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9년과 2016년, 2019년에는 대형트롤의 동해 바다 조업구역 제한을 풀어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강원도와 경북지역 어업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험조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해양수산부가 직접 해제에 나서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물론 트롤업계의 집요한 요구가 우회적으로 해양수산부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어업인들의 반발을 유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울릉도 항구에 ‘대형업자보다 어업인이 먼저다’, ‘수산업자보다 영세어민 먼저 살려라’라는 현수막이 나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강원도와 경북 어업인들이 배신감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상실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100만톤 이하로 떨어진 3년 전부터 어업정책 기조를 총허용어획량(TAC)을 기반으로 한 자원관리형 어업에 두고 있다. 주요 어종들에 대한 어획량을 관리하면서 어선 감척, 금어기·금지체장 설정 및 확대 등을 통해 자원을 회복해나간다는 것이다.

특히 어획 강도가 높거나 자원량에 비해 어선 세력이 높은 업종에 대해서는 직권 감척이라는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동해안의 오래된 불법어업인 채낚기와 트롤어선들의 공조조업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울릉도 간담회에서는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등 동해안 어업인들의 격앙된 분위기가 그대로 표출됐다. 울릉도 어업인 90%가 오징어 단일 어종에 의존하고 있는데, 오징어 씨를 말릴 수 있는 대형트롤 어선의 동해 진출은 어업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대형트롤 어선의 동해 입어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동해안 어업인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조치인지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에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중국 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이후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한 것은 사실이다. 매년 2000여 척의 중국 어선들이 수년 전부터 오징어를 잡아가고 있으나 대책이 나온 것은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에 대책이라고 제시한 것이 대형트롤 어선들의 시험조업인 것이다. 중국 어선 때문에 울고 대형트롤 때문에 죽게 생겼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불법 공조조업이 암암리에 성행되고 있는 마당에 대형트롤 어선이 동해안에 합법적으로 진출한다는 것 자체가 오징어 자원의 보호·유지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화된 트롤 어선의 어획량은 웬만한 어항 전체 매출과 맞먹을 수 있다.

강원도·경북 동해안 어업인들의 들끓는 원성을 가라앉히려면 동해안으로 합법적으로 진출하는 길을 열어주는 이유가 오징어 자원을 유지하고 어업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길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현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면 철회하고 다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협의나 논의 없이 추진한다면 불만과 반발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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