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잠녀는 건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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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잠녀는 건들지 말라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1.05.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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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호이, 호이. 호이, 호이.

간간이 들리는 숨비소리가 일출봉에 부딪쳐 터진목으로 건너간다. 분홍색 부표 10여개가 윤슬 사이로 오간다. ‘호이 호이’ 잘 있냐 금순아. 응, 잘 있어 말자야.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물벗’의 삶을 확인하는 소리이자 내 몸에 생명 불어넣는 소리이다. 물벗은 작은 움직임과 숨비소리에도 서로의 안위를 살필 수 있다. 그 숨비소리는 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내는 소리이다.

운이 좋았다. 여행객들이 가는 길을 벗어나 포구로 내려서길 정말 잘했다. 그리고 점심 무렵까지 몇 시간을 성산포를 오르내렸고 하룻밤을 더 묵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날이다. 미역이나 우뭇가사리나 톳 등 해조류는 소라와 달리 채취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아무 때나 채취할 수 없다. 소라는 금채기를 제외하고 한 달에 두 번 물질을 하는 날은 채취할 수 있다. 하지만 해조류는 채취시기가 있다.

5월은 제주 해녀들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달이다. 일 년 소득의 절반을 우뭇가사리로 얻는다. 채취하는 날은 마을에서 결정하지만 채취량은 해녀의 능력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몸’(모자반), ‘메역’(미역), ‘우미’(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봄철에는 해녀들의 모든 신경은 바다에 가 있다. 그래서 ‘봄 잠녀는 건들지 말라’했다.

파도가 높고 바람이 거세 물질을 하기 힘든 날은 바닷가로 밀려온 우미를 줍기 위해 쉴 틈이 없다. 바위에서 자라는 우뭇가사리가 파도에 떨어져 밀려온 것이다. 이러다 보니 봄철에 ‘식객(제사)’이라도 있으면 남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려야 한다.

우뭇가사리는 자홍색으로 조간대에서 수심 20~30m 깊이의 바다에 붙어 자란다. 연골질인 납작한 실 모양으로 깃털처럼 가지를 많이 내어 다발을 이룬다. 여름 번식기가 지나면 본체의 상부는 녹아 없어지고 하부만 남아 있다가 다음 해 봄에 다시 새싹이 자라난다. 미역도 그렇지만 녹아 없어지기 전에 채취해야 한다.

동해안, 남해안과 서해의 먼 바다 섬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생산량의 대부분은 제주에서 채취하고 있다. 우뭇가사리는 한천을 만드는 재료이다. 깨끗하게 씻어 햇볕에 잘 말려서 솥에 넣고 푹 삶아서 걸러내고 물을 식히면 우무가 된다. 여름철 콩국에 띄어 음료나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식품첨가용, 공업용, 농업용,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한다.

일제강점기에도 해녀들이 목숨을 걸며 지키려고 했던 것이 우뭇가사리였다. 일본인 도매상들이 해녀어업조합, 관리들과 결탁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강제 매입을 하려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30년 성산포에서 ‘우뭇가사리 부정 판매사건’이 발생했다. 우뭇가사리를 시세의 반값으로 매입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듬해 하도리에서도 일본 수집회사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해산물 매입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해녀어업조합과 관리들이 일본인 상인과 결탁해 해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에 분개했던 것이다. 그리고 1932년 1만7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내가 80이라면 믿겠어요?’, ‘이어도사나’라고 노래처럼 중얼거리며 해녀가 망사리를 짊어진다. 나이를 묻자 한사코 “내 나이를 묻지 말라”며 웃던 어머니다. 긴 노끈을 이리저리 엮어 망사리를 짊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사내가 트럭 시동을 걸었다.

선창을 서성일 때부터 지켜봤던 그 사내는 어머니의 남편이었다. 멀리 성산 남쪽 끝자락에서 해녀가 망사리를 밀며 헤엄쳐와 짊어지고 트럭에 실을 때까지 사내가 한 일은 오리발을 옮겨준 것뿐이었다. 해녀는 사내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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