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2막 어촌 이야기]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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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2막 어촌 이야기] 박민호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1.03.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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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 지친 마음 바다가 안아줬죠”

섬에서 태어났지만 바닷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섬에는 중학교가 없었기에 진학을 하려면 뭍으로 떠나야 했다. 그것이 34년간 이어진 객지 생활의 시작일 줄 그때는 알았을까? 젊어서는 건설업 분야에 종사했다. 이후에는 치킨 장사도 해보고 노래방도 해봤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이어지는 도시 생활,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박민호 씨가 선택한 곳은 ‘바다’였다.

삶의 행복을 찾아 귀어 결심
화태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아늑한 섬마을이다. 여수 시내에서 돌산도를 지나 한참을 더 내려와, 다시 한 번 바다를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외진 마을이었다. 
섬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2015년 돌산도와 연결되는 연륙교인 ‘화태대교’가 생기면서부터였다. 이 다리가 생기고 나서부터 낚시를 즐기는 이들은 물론 여행객들의 발길이 점점 많아졌다.
“제가 이곳 화태도로 귀어하겠다고 결심한 아주 큰 까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 다리입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은 거의 평생을 여수 시내에서 살았어요. 하루아침에 살던 곳과 인연을 끊을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큰아들은 직장이 여수 시내에 있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다면 식구들 중 아무도 이곳으로 귀어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을 거예요.”
박민호 씨는 귀어 전 여수 시내에서 13년간 노래방을 운영했다. 주로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사교적인 성격인 민호 씨에게 또 하나의 큰 고역은 주변 세계와의 단절이었다. 친구들 모임에도 마음대로 못 나가고 가족 행사에도 참석하기 힘든 자영업자의 숙명이 급기야 우울증까지 오게 했다.
“사실 귀어 전 수입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창때는 한 달에 1500만 원까지 벌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들도 저를 피해 다니더군요. 저한테 마음대로 밖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였어요. 우울했습니다. 돈도 귀찮고 손님이 오는 것도 귀찮았어요. 화태도에 다리가 연결된 것이 바로 그맘때였습니다.”
민호 씨는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리고 어릴 적 익숙한 바다가 있는 화태도로 가자고 설득했다. ‘적게 벌더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것이 설득의 주된 포인트였다. 물고기 잡아서 반찬도 하고 텃밭에 상추도 키워서 먹자는 민호 씨의 말에 아내도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줬다고 한다.
“저는 꼭 아내와 같이 귀어를 하고 싶었어요. 혼자 와서 자리 잡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자리’라는 것은 같이 만들어야지 혼자서는 절대로 못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도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초보 어부에서 어촌계장으로
2016년 봄 화태도에 들어온 민호 씨는 일단 0.9톤짜리 어선을 자비로 구입했다. 어선어업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작은 배를 가지고 예행연습을 한다는 마음으로 어업을 시작했다.
“처음 1년 동안은 바다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호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고기도 없는 어장으로 나가는 바람에 허탕을 치기 일쑤였죠. 저는 분명 저기 갯벌이다 보니까 낙지가 있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거기다 낙지통발을 놨는데 어르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야단을 치시는 겁니다. ‘거기에 뭔 낙지가 있다냐, 안 된다, 거둬라….’ 하지만 저는 고집을 피워서 했는데 역시 어르신들 말씀이 맞더군요.”
밤 생활만 하다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것도 민호 씨에게는 꽤나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으며 하루하루 꾸준히 바다를 만나자 조금씩 초보 어부 티를 벗어내기 시작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제게 추천해주신 어종은 문어였어요. 어구 값이 저렴한 편이어서 큰 부담도 없었죠. 그래서 문어단지로 어업을 하게 되었고, 그 뒤로 통발어업을 배워서 장어도 잡고 있습니다.”
귀어 2년 차, 민호 씨의 눈에는 이제 제법 바닷길이 보이고 어디에 고기가 있는지도 감이 왔다. 그러나 0.9톤짜리 배로는 마음껏 작업하기가 부족했다. 민호 씨는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3톤짜리 새 어선을 진수했다. 이때가 민호 씨의 본격적인 어부 생활, ‘화태바다호’ 선장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문어잡이는 보통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때부터는 새벽 4시 반에 기상해서 5시에 출항합니다. 어장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작업시간이 많이 소요되죠. 작업이 끝나면 오후 2~3시에 입항해서 어획물을 처리하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가 어구를 손질합니다.”
민호 씨는 이렇게 잡은 문어를 수협에 위판하는 대신 도시 소비자와 인터넷 직거래를 하는 편이 수익 면에서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조와 펌프, 냉동시설을 갖춘 물류창고를 만들었다. 지금은 본인이 잡은 문어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이 잡거나 양식한 물고기도 판매를 대행해준다. 중간 마진을 없애고 소비자와 직거래로 연결하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다. 
귀어 2년 차에서 3년 차까지, 민호 씨는 초보 어부로서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수입을 올리며 안정적으로 섬에 정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하반기부터 민호 씨의 귀어 생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즈음 공석이 된 어촌계장으로 마을 사람들이 민호 씨를 추대한 것이다.
“우리나라 어느 섬이나 마찬가지지만, 저희 화태도 역시 주민 대부분이 노년층입니다. 저희 섬에서는 제가 거의 막둥이나 다름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귀어를 했음에도 저에게 중요한 자리를 맡겨주신 거죠.” 


다 같이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민호 씨의 4년 차와 5년 차 귀어생활은 ‘화태바다호 선장’보다 ‘어촌계장’으로 살아온 날이 대부분이다. 어업만 해도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 바쁜 일상인데, 민호 씨는 여기에 더해 마을 일까지 맡아서 하고 있으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어촌계장 일이 하려고 들면 정말 끝이 없습니다. 동네 대소사는 다 챙겨야 하고 홀로 계신 어르신들의 손발도 되어드려야 하죠. 오죽하면 동네에서 제 별명이 ‘박반장’입니다(웃음).”
민호 씨는 마을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 어촌뉴딜 300사업 준비에도 뛰어들었다. 2018년 10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9년 한 해는 거의 꼬박 이 사업 준비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설마 될까?’ 하는 주민들도 많았어요. 제 발품과 사비를 들여 수십 차례 관공서를 드나들고 서류를 작성해 꼬박 1년 가까이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7억 원 규모의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됐습니다.”
귀어인 출신으로 누구보다 젊은 사람들의 귀어를 권유하는 민호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화태도부터 ‘귀어업인이 정착하고 싶은 마을’로 만들고자 한다. 거주기간 10년을 채워야 하던 어촌계 진입장벽도 정관을 바꿔 1년으로 확 낮췄다. 귀어인 다섯 명이 출자해 마을의 빈 어장에서 외지인이 멍게 양식을 할 수 있도록 어장을 개방하기도 했다.
“어촌계 일을 맡아 하면서 동네 어업인들한테 제안을 했습니다. 위탁판매를 해드릴 테니 물건을 가지고 오십시오. 그래서 직거래 판매량이 많아지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에게 가공작업을 맡겨드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언뜻 보면 그냥 할머니 같지만, 알고 보면 어류 손질의 최고 전문가들이세요. 앞으로는 이 같은 수산물 가공업을 더욱 확대해 마을의 일자리도 창출하고 수입도 더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이미 많은 것을 바꾼 민호 씨가 앞으로 더 새롭게 바꿔나갈 마을의 미래상은 무엇일까? 주민들 모두 다 같이 잘사는 마을, 누구나 귀어하고 싶은 살기 좋은 마을. 이것이 바로 민호 씨가 꿈꾸는 화태도의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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