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2막 어촌 이야기-황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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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2막 어촌 이야기-황성진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1.02.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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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꿈 이루려 귀향 어촌마을 되살아나 신납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를 좋아해 바다에서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정년퇴직까지 가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장교 복무와 국방부 공무원 생활까지 포함하면 총 31년간 ‘나라’를 위해 살아온 세월,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나’와 ‘가족’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황성진 씨는 그래서 조기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익숙한 바다가 있는 포항 방석리로 돌아왔다.

30대 시절부터 꿈꾼 다이빙 리조트 사업
방석리는 경북 포항 북동쪽 끝자락에 있는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다. 주말이면 찾아오는 낚시객들은 있었지만, 다른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오기엔 아무런 즐길거리도 편의시설도 없었다. 오히려 주말 낚시객들이 어지럽히고 간 항구 주변과 마을 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 그래도 낙후된 마을 분위기가 점점 더 어지럽혀지고 있었다.
어두웠던 마을 분위기가 새롭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귀어·귀촌인 한 사람이 오고 난 이후부터였다. 방석리에서 ‘아쿠아벨 다이빙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황성진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8년 고향인 포항 방석리로 ‘U턴형’ 귀어·귀촌한 황 대표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주변 환경에 접목해 어촌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방석리에 와서 어촌 비즈니스 사업을 하려고 보니 마을 환경부터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파제와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에 낚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죠. 시키는 사람은 없었지만 거의 날마다 마을 곳곳을 청소했어요. 그러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저의 동네 사랑을 알아보시고 마을 자율관리어업 공동체 총무를 맡겨주시더군요(웃음).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이웃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방석항 등대 주변과 마을 곳곳을 벽화와 트릭아트로 꾸몄더니 찾아오는 분들의 반응이 한결 좋아졌어요. 관광객을 위한 마을 공동화장실 설치 등 마을 환경을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황 대표가 다이빙 리조트 사업을 꿈꾼 것은 30대 시절부터였다. 어릴 때부터 다이빙을 좋아해 5m 정도까지는 맨몸으로 바다를 누볐다는 황 대표는 20년 전부터 주말마다 고향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킨스쿠버 다이빙에 빠져들었다.
“고향 친구 중에 해군 특수부대 근무자들이 많았어요. 유디티실(UDT/SEAL) 대원들인데 그 친구들한테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죠. 어릴 때 친구들하고 물놀이할 때 참 재미있게 했지만 10m, 20m, 30m 이상 깊은 수심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없지 않았습니까?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후 정말 깊은 수심에 들어가니까 얕은 수심에서 봤던 수중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쫙 펼쳐지는 수중계곡, 거기서 짜릿함을 느꼈던 게 제가 이 스쿠버 다이빙을 언젠가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죠.”
황 대표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갈수록 잡념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렇게 잡념이 사라지다 보면 물속에 있는 30분, 1시간이 그야말로 ‘힐링’이 된다는 것이다.


다이빙 리조트에서 시작해 펜션과 식당까지
ROTC 장교로 임관해 군 복무를 마치고 국방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황 대표는 정년퇴직을 5년 남기고 조기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다이빙 리조트 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나섰다. 
“다이빙 리조트 사업은 교육도 해야 하고, 장비도 대여해야 하고, 안전 차원에서 여러 가지 보험도 들어야 합니다. 우선 교육을 위해서는 민간 교육단체의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야 하고 해양경찰의 안전교육도 수료해야 합니다. 또, 다이빙 포인트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보트를 운전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 면허가 필요합니다. 이 밖에도 공기통 충전하는 법, 장비를 관리하는 법 등의 지식을 쌓아야 하고 수중레저업에 등록도 해야 하죠.”
황 대표는 다이빙 손님들이 주로 몰려오는 주말이면 아침 6시에 잠에서 깬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공기통 충전을 확인하고 샤워장과 파우더룸 청소, 보트 점검 등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면 오전 9시부터 다이빙이 진행되고, 통상 오후 1시~2시 정도에 다이빙이 끝난다.
“다이빙 손님이 토요일에 집중되다 보니까 그때는 정신 없이 바쁘게 일에 집중하고, 평일은 조금 자유롭게 취미활동도 즐기는 편입니다. 도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저도 충분히 즐기고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황 대표는 현재 다이빙 리조트뿐만 아니라 펜션, 다이버를 위한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다. 다이빙 리조트와 펜션은 연간 1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다이빙숍을 시작하고 보니까, 멀리 도시에서 오신 분들이 편안하게 먹고 자고 하실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식당과 펜션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식당 같은 경우는 다이버를 위한 식단을 최대한 마련하고 있죠. 저희 누나와 동생이 지역에서 나는 수산물을 이용해 안전하고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이빙 손님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 정도죠. 독채 펜션은 제 아내한테 맡겨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황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아쿠아벨 다이빙 리조트’는 마을의 유휴시설이었던 오래된 마을회관 건물을 임대해 리모델링한 것이다. 황 대표는 큰 부담 없이 사업 공간을 마련했으니 좋고, 마을은 방치돼 있던 시설을 이용해 임대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좋다. 귀어·귀촌인과 어촌마을의 상생이다.


개인 사업을 넘어 마을 주도형 소득사업의 거점으로
아무리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고는 해도 ‘텃세’는 있게 마련이다. 중학생 시절 고향마을을 떠났다가 50대 중반에 돌아온 황 대표의 경우는 어땠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와, 같은 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고향 마을이라도 타지에 살던 사람이 들어오면 ‘저 사람이 과연 우리 마을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인가’ 하고 경계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저는 그런 경계심을 풀기 위해 인사도 열심히 하고 마을 청소도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마을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죠. 그래서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해양수산부 국책사업인 어촌뉴딜 300사업, 경상북도 수산진흥사업 등 마을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원사업에 공모했습니다.”
황 대표는 국방부 공무원 생활을 통해 익힌 행정 경험을 살려 마을사업 서류와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이웃 주민들도 마을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황 대표의 진정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황 대표는 마을 자율관리어업 공동체 총무와 어촌뉴딜 300사업 지역협의체 간사까지 맡으며 방석리 마을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제가 하는 어촌 비즈니스 사업이 어떻게 보면 어민들한테는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어민들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제가 다이빙 리조트를 운영하다 보니까, 어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결국은 제가 여기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대표의 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방석리 일대는 전에 없던 활기가 생겨났다. 황 대표는 자신의 리조트가 개인 사업이 아닌 마을 주도형 소득사업의 거점이 되어 마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항구의 규모에 비해 어선어업 종사자가 없는 방석리의 형편상, 향후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는 종합 어촌체험마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황 대표의 생각이다.
“어촌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산업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 능력이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고기 잡는 사람도 필요하고, 잡은 고기를 판매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잡고, 팔고, 가공하고, 체험하는 활동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어촌에 와서 자기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귀어·귀촌을 꿈꾸는 분이라면 도시에서 익힌 자신의 경험이 어촌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자료 제공=한국어촌어항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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