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2막 어촌이야기-강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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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2막 어촌이야기-강성욱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1.02.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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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군대에서 갓 전역한 서울 청년 강성욱 씨는 들뜬 마음으로 속초행 버스에 올랐다. 낚시 물류사업을 하는 친형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대한민국 남자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를 마친 성욱 씨의 마음은 사뭇 홀가분했다. 그래서였을까. 속초에 도착해서 바라본 동해의 힘찬 바다는 성욱 씨의 마음에 더욱 깊고 푸르게 스며들었다.

 

양양·속초는 ‘제2의 고향’
2020년 5월, 강원도 양양 수산항. 저 멀리 뱃전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올해로 혼인 20주년을 맞이한 강성욱 씨와 허난실 씨 커플이다. 
두 사람 앞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보인다. TV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서 ‘인생은 행복海 - 애처가 남편의 속사정’이란 제목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귀어 후 예전보다 더욱 깨가 쏟아지는 부부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카메라에 쏙쏙 담기고 있다.
“저와 아내가 평생의 짝이 된 것도 어찌 보면 이곳 속초 바다 덕분입니다. 제가 군에서 제대했을 때 잠깐 쉬러 속초에 온 적이 있었죠. 낚시 사업을 하시던 형님도 도와드릴 겸 해서요. 그런데 한번 왔더니 계속 머물게 되더군요. 워낙 바다낚시를 좋아했고, 형님 사업을 돕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생일파티가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서너 달 정도는 속초와 서울을 오가며 쫓아다닌 것 같습니다(웃음).”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난실 씨에게 성욱 씨가 내민 비장의 카드가 바로 ‘속초’였다.
“속초에는 맛있는 게 정말 많으니 꼭 한번 놀러 오라고 얘기했죠. 그랬더니 어느 날 진짜로 온 거예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해서 1년 뒤 부부가 되었습니다.”
강원도 속초와 양양은 성욱 씨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속초와 양양은 성욱 씨에게 결정적인 인생의 무대가 되어주었다. 아내와 알콩달콩 사랑을 키운 곳도, 신혼살림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곳도, 하나뿐인 아들이 태어난 곳도 모두 이곳이다. “아내와 짝을 이룬 직후 형님 사업에 위기가 닥쳤어요. 형님과 거래하던 낚시가게 하나가 파산을 하고 만 거죠. 미수금이 많았던 그 가게를 그냥 포기하긴 힘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형님을 돕는다는 생각도 있었고 마침 제가 낚시도 좋아했기에 그 가게를 인수해 운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성욱 씨가 시작한 강원도에서의 첫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과 2003년 잇따라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한반도에 들이닥친 태풍 루사와 매미 때문이었다.
“태풍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굽이져 흐르던 양양 남대천이 일직선이 되고 말았어요. 저희 낚시가게는 강가에 놀러 온 사람들 상대로 장사를 많이 했는데 남대천 물줄기가 변하고 나서는 그 손님들이 뚝 끊기고 말았죠. 반지하에 있던 물류창고도 침수되어 더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귀어 결심의 원동력은 ‘가족의 힘’
2004년 성욱 씨는 결국 양양에서의 낚시 사업을 접고 서울로 돌아왔다. 성욱 씨가 서울에서 선택한 직종은 운전이었다. 당시 운전 업종에서는 가장 인기 높고 경쟁도 치열했던 공항리무진 회사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했다. 이후 성욱 씨는 귀어 전까지 14년간 공항리무진 드라이버로 ‘아스팔트 위의 삶’을 이어갔다.
“공항리무진을 운전하다 보면 일종의 직업병이 생깁니다. 장시간 운전과 짐 실어주는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나 어깨를 다치기 쉽죠. 저는 허리에 문제가 생겼어요. 2017년에는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을 만큼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허리 수술 후 성욱 씨는 회의감에 빠졌다. 공항리무진 운전이 수입이나 직업 안정성 면에서는 괜찮았지만, ‘과연 건강까지 잃어버리며 해야 할 일인가?’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회사에서 백발이 성성한 어느 선배 기사님이 눈에 들어왔어요. 어제와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스케줄로 똑같은 운전대를 잡는 그 선배님의 모습에서 10년 뒤 제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지금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면 미래의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겠구나….”
성욱 씨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젊은 시절 숱한 기억이 스며 있는 강원도 바다였다. 그곳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하루 거세져만 갔다. 성욱 씨는 가장 먼저 아내에게 생각을 털어놨다. “아내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흔쾌히 제 생각에 동의해줬어요. 신혼 때 바닷가에서 살았던 경험이 나름대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에요. 바닷가에 살아도 곤궁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죠.”
성욱 씨는 그 이듬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아들한테도 의견을 물어봤다. 만약 아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귀어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아들 또한 양양이 고향이라 그런지 아빠의 귀어 결심에 찬성표를 던져줬어요. 결과적으로 저보다 먼저 양양에 온 사람도 아들입니다. 당시 시기가 고등학교 진학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입실을 위해 2018년 2월에 양양에 왔어요. 저와 아내는 두 달 뒤인 4월에 이사를 했습니다.”


겨울엔 어선어업, 여름엔 어촌체험활동 사업
성욱 씨가 본격적인 귀어 준비에 나선 것은 2017년 하반기부터였다. 이미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둔 상태였기에 마음도 가벼웠다. 귀어 대상지로 일찌감치 점찍은 곳은 당연히 속초, 양양 지역이었다. 젊은 시절 직접 지내본 곳이긴 했지만 새로운 터전을 꾸려야 했기에 수시로 답사를 다니며 현장 분위기를 살폈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도 어촌 생활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는 권영환 어촌계장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촌계장님과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2018년 가을부터 통발배를 타게 됐습니다. 낚싯배 운영을 위한 해기사 면허도 취득했죠. 그리고 2019년 8월에는 수협의 자금 지원을 받아 3톤짜리 어선 ‘동해어부호’를 진수했습니다. 11월부터 4월까지 성어기에는 자망어업을 하고, 고기가 잘 안 잡히는 5~10월에는 낚싯배 운영 등 어촌체험활동 사업을 주로 합니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겨울 시즌, 성욱 씨의 일과는 새벽 2시에 시작된다. 3시 30분 항구로 출근해 4시에 출항하고, 이후 한 시간 정도 그물 걷는 작업을 한다. 주로 잡는 어종은 도루묵, 청어, 임연수어 등이다. 5시부터 두 시간 동안은 그물 안에서 고기를 정리해서 첫 번째 위판에 다녀온다. 이후 나머지 위판과 개인 거래 등을 통해 남은 물고기를 처리하면 오후 3~4시까지 그물을 정리한다. 그리고 내일 새벽에 걷을 그물을 부려놓고 귀가하면 오후 5시. 저녁 식사 후 8~9시면 잠자리에 든다.
성욱 씨의 아내는 최근 전국어촌체험마을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양양에 오기 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회계와 행정 업무를 봤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다면 저는 절대 귀어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내와 아들 둘 중 한 사람만 반대했어도 절대 오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핵가족 시대인데 떨어져 살면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저는 운 좋게 가족들의 응원을 받았고, 마을에 와서도 좋은 분을 멘토로 만나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욱 씨는 귀어 후 자신의 사업과 어촌에서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 ‘동해어부’와 블로그(https://m.blog.naver.com/bassno11)를 운영하고 있다. 성욱 씨는 이 같은 소통을 통해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어촌 생활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그래서 점점 소외돼가는 어촌이 누구에게나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이 되길 꿈꾼다.
<자료 제공=한국어촌어항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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