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업 유산의 가치
상태바
한국 어업 유산의 가치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0.04.10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사회문화적 측면-갯벌과 어촌 마을

갯벌이 쓸모없는 땅에서 생명과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동안 갯벌은 국토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서자였다. 온갖 설움을 받으면서 갯벌은 인간에게 철 따라 낙지, 숭어, 민어, 병어 등 먹을 것(갯것)을 주었다. 가난한 시절에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웠고, 땅이 필요한 시절에는 제 몸을 농부들에게 내주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산업단지가 필요할 때는 제살에 말뚝을 박았다. 이렇듯 갯벌은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농부들에게 논과 밭이 있듯이 어부들에게는 ‘어장’이 있다. 어장은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바위와 갯벌, 수심이 낮은 연안, 먼 바다, 심지어 공해상에도 있다. 육지와 가까운 갯벌과 바다에 형성된 어장은 대부분 마을 공동어장이며 마을과 마을 사이에 경계가 있듯 마을 공동어장에도 경계가 있다. 이를 ‘지선’이라 하고 보통 지선어장이라 한다. 이 지선어장 안에서 국가로부터 어촌계가 면허를 얻어 바지락, 김, 백합, 미역, 어류(가두리) 등을 양식한다. 마을 총회를 통해 어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양식 품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논의한다.

갯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마을이나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는 마을은 마을 공동자원인 어장에 대한 규칙들이 매우 체계적이며 합리적인데 일찍부터 마을회의를 통한 의사결정 과정이 체계화돼 있다. 예를 들면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자식들이 결혼 후 분가해 같은 마을에 거주할 때, 장남과 차남, 가족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등 조건에 따라 어장 분배를 구분해 놓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마을회의에서 정한 규칙을 어겼을 때 어떤 벌칙을 내릴 것인가도 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채취를 해야 할 시기를 어기거나 김이나 미역을 채취한 경우, 전복과 소라를 따거나 불법으로 어장을 이용했을 경우, 심지어는 도둑질을 했을 때도 제재 방식으로 양식권이나 채취권을 박탈하는 등 일정 기간 행사권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는 갯벌이 어촌 사람들에게는 생존권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율은 모두 어촌계 규약과 같은 마을규칙에 의해 정해져 있는데, 이를 ‘공동체적 규제’라고도 한다. 농촌과 달리 어촌 마을이 공동체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공동으로 이용해야 하는 어장, 즉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공동체 문화와 놀이 문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공동어장에서 이뤄지는 어업 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마을어업이다. 마을어업은 갯벌이나 해초를 채취하는 바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마을어업은 만조 시 일정한 수심 이내의 수면을 구획해 패류, 해조류 또는 정착성 수산동식물을 관리·조성해 포획·채취하는 어업이다.

마을어업은 만조 때 해안선에서 500m(서해안의 경우 1000m) 내의 수면에 면허를 주는데, 조간대 갯벌 대부분은 마을어업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어장은 유럽과 달리 어업인의 생업 공간이며 생활의 장이다. 갯벌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공유수면이다. 개인이 사고 팔 수 없으며 어촌마을도 어촌계를 통해 이용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갯벌어장은 물권으로 어촌계가 공동으로 점유해 운영하는 총유 체계다.

마을어업의 이용권은 어촌계나 지구별수협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 지선어장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즉 어촌계에 가입한 마을 주민들이 어장을 관리하고 수익도 나누어 갖는다. 공동어장은 1990년대 접어들면서 공동 점유, 사적 점유, 개별 소유로 분화됐다. 양식어업이 발달하면서 갯벌은 어업인들에게 육지의 논과 밭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김, 굴, 바지락 양식이 발달하면서 바다와 갯벌은 재산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