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퍼주기보다 제도 개선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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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퍼주기보다 제도 개선이 먼저다
  • 탁희업 기자
  • 승인 2020.02.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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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해양수산부 정책은 스마트에 쏠려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을 융합해 최적의 시스템을 만든다는 스마트화는 해운·항만뿐만 아니라 수산 분야에도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2월 경제부총리까지 참석한 ‘제8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2019년 제6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수산업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산혁신 2030계획’을 확정했다.

수산자원 관리부터 수산물 생산, 유통, 소비까지 전 단계를 혁신해 수산업 전체 매출액을 2030년 100조 원으로, 2017년 4900만 원이던 어가소득을 2030년 8000만 원으로 끌어올리고, 4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수산 분야에서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수산혁신 2030계획이다.

이때 어촌뉴딜 300사업은 물론 첨단 스마트양식 확산을 위한 통합관리 플랫폼 기술 개발 사업, 육상과 내수면의 대규모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조성, 외해양식 스마트 플랜트 구축을 위한 연구와 시설물 개발 등의 투자계획을 포함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최근 해양수산부의 정책자금 지원 규모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예산 퍼주기가 예년과 다른 모습이다.

어촌 사회나 어업인,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사업 규모와 지원이 늘어날수록 반가운 게 사실이다. 특히 소비 부진과 가격 하락, 국제경쟁력 하락 등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수산계로서는 정부의 이러한 사업 추진과 지원 확대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산 분야의 경우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기존의 개인 경험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양식기술에서 벗어나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대량생산과 유통, 가공까지 염두에 둔 스마트양식 클러스터사업은 개소당 4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지원되는 수산 분야의 핵심 사업으로 떠올랐다.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향후 사업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부산에 이어 경남 고성과 전남 신안이 대상지로 선정됐지만 사업자 공모에는 각 지자체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어촌뉴딜 300사업 역시 같은 상황이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추진되는 어촌뉴딜 300사업은 개소당 100억 원의 자금이 지원되며 전국 70개소에서 추진된다.

사업 추진 목적은 전국 어촌·어항 기반시설을 현대화하고 어촌이 보유한 핵심자원을 활용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발굴함으로써 어촌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어촌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항·포구나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조성을 제외한 사업에 100억 원이 투입되는 사례는 좀처럼 없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사활을 건 듯한 모습이다.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정도다.

하지만 치열한 사업 유치 경쟁과 달리 업계나 어업인들은 사업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정책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핵심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어느 정도 궤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계획의 원활한 시행을 위한 제도적 혁신에 대해서는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실행력을 뒷받침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예산 지원 규모 확대가 산업 발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어촌이나 어업인 등 현장의 가려운 곳을 어떻게 해소해주느냐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눈앞의 자금 지원으로 당장 관심을 유도할 수 있으나 투자 대비 사업 효과나 성공 가능성은 현장의 문제가 해소될 때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국내 광어, 참돔 등 어류양식업계는 수입산 활어 등으로 말미암아 출하 감소는 물론 가격 하락으로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들의 요구는 자금 지원이 아니다. 활어가 수입될 때 규정에 맞는 철저한 검사와 검역을 실시해달라는 것이다.

수산혁신 2030계획에는 아세안 10대 판매거점 확보, 수출기업의 현지 지원 강화 등을 통해 해외 신시장 개척을 추진한다고 돼 있다. 활어 수출을 위해서는 수입국과의 위생협정 체결과 수출품목 지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베트남, 캐나다, 러시아 등 시장 개척 가능성이 높은 이들 국가에는 품목 지정이 돼 있지 않다. 대기업의 양식산업 진입 장벽을 해소한다면서도 양식어장 ‘면허 심사·평가제’ 도입을 위한 실행방안도 없다. 친환경 배합사료 사용 의무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면서도 모든 배합사료의 기본이 되는 어분의 항산화제 함유량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어촌과 어업 현장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막대한 사업자금 지원에 수산업의 재도약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수 있다. 산업 현장의 불편, 부당한 법과 제도 개선만으로도 수백억 원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어업인들 역시 예산 퍼주기보다는 제도 개선을 더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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