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징어가 메말라버린 울릉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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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오징어가 메말라버린 울릉도를 가다
  • 안현선 기자
  • 승인 2019.12.30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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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잡이 인생에 최대 고비 직면”

어업인들 “50~60년 조업해왔지만 역대 최악”
2015년까지는 2000톤 대 이상 유지해왔지만
2016년부터 급감… 2019년 650톤가량 어획
中 어선 북한 수역 조업이 자원 고갈 주원인
어업인들 정부 측에 생계 유지대책 마련 촉구


“동해에 오징어가 없다”는 어업인들의 하소연은 당장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어업인들은 오징어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두고 ‘이러다 명태 꼴 나겠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해왔다. 당시엔 다들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이 말이 실제가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현실이 되기까지는 불과 2~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경북 울릉도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오징어 섬’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울릉도는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지역 경제의 동맥과 같은 오징어산업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오징어 1축 경매가 10만 원 훌쩍 넘어
지난 12월 9일 오전 6시를 전후한 시각, 울릉군수협 저동위판장에는 오징어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징어채낚기어선들이 입항하면 경매사가 울리는 종소리에 따라 몇몇의 중도매인이 몰렸다 흩어지기를 반복했지만, 경매를 진행하는 시간은 찰나만큼이나 짧았다. 어업인들이 잡아온 오징어 물량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울릉도 선적 연안복합어선(9.77톤) 대부분의 선주들은 이날 10바구니(급)도 안 되는 초라한 양의 오징어를 경매에 부쳤다. 바구니에는 크기별로 선별한 오징어가 담기는데 큰 것은 20마리, 작은 것은 30마리 등으로 나눠진다. 이날 오징어 경락가는 20마리(1축)가 10만6000원에, 30마리가 5만~7만 원 사이에 거래됐다.
울릉도 어업인들은 지난 50~60년간 오징어를 잡아왔지만, 지난해처럼 바다가 메말라버린 경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안복합어선을 운영하는 바다호 선주 박원호 씨는 “12월은 오징어 성어기인데 어획량이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과거 200~300바구니를 잡아왔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오징어가 얼마나 안 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경락가 또한 “2년 전만 해도 4만~5만 원(20마리 기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0만 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지만 2019년은 유난히 더했다.
울릉군에 따르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울릉군수협에 거래된 오징어는 한 해 8000톤에서 1만 톤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3년 7323톤으로 줄어든 데 이어 2010년 2897톤으로 떨어졌다. 2015년까지는 2000톤 대를 유지했으나 2016년 985톤, 2018년 750톤으로 급감했다. 2019년 어획량은 12월 24일 기준 650톤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훨씬 더 줄었다.
특히 10월부터 12월까지는 오징어 성어기다. 2018년 10월~12월에는 685톤 조업, 판매고 65억9800만 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3개월 동안 울릉도서 잡아 올린 오징어는 162톤, 판매고 17억2600만 원에 불과했다.


중국 어선 북한 수역 조업이 가장 큰 문제
어업인들은 동해에 오징어가 사라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울릉도 근해로 남하하는 오징어 길목인 북한 수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그물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박일래 저동어촌계장(전 한수연 울릉군연합회장)은 “100~300톤 규모의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 입어해 100만~300만㎾ 밝기의 고광도 집어등을 켜고 대형끌그물로 성어뿐만 아니라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있어 자원 고갈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특히 기상 악화 시 1000여 척에 가까운 중국 어선들이 울릉도로 피항해 폐기름을 유출하고 바다에 생활쓰레기를 투기하는 등 2차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국 어선은 북·중 공동어로협약을 체결한 2004년부터 북한 수역에 입어해 조업을 하고 있다. 2010년엔 642척에 달하던 중국 어선은 2011년 1299척으로 두 배가량 늘었으며 2018년 2161척으로 최고 정점을 찍었다. 2019년엔 1882척의 어선이 북한 수역에 입어했다.
이들은 이르면 3월부터 북한 수역에 들어가 그다음 해 1월까지 조업을 하다 중국으로 귀항한다.
또한 울릉군 자료에 따르면 기상 악화로 울릉도로 피항한 중국 어선은 2013년 612척, 2014년 440척, 2015년 516척, 2016년 821척, 2017년 723척, 2018년 208척, 2019년 80여 척에 달했다.
박 계장은 “연안채낚기를 경영하는 어업인들의 수익이 예년엔 1억5000만~1억18000만 원, 많게는 2억 원에 달했지만, 중국 어선의 마구잡이식 조업으로 지금은 몇천만 원 벌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당장 배를 팔고 다른 업에 나설 수도 없어 어업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울릉도 어업인들의 요구사항은?
울릉도 어업인들은 오징어 어획 부진으로 어려워진 생계 유지를 위해 △유럽연합과 중국에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입어를 금지할 것을 촉구하고 △울릉군을 어업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어업인의 모든 정부자금 상환을 연기하고 이자 감면과 함께 생계자금을 무상으로 지원할 것과 △연안어업 구조조정 예산 증액 및 감척조건 출어 충족 일수를 축소해줄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김해수 울릉어업인총연합회장은 “어업인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면서 “울릉도를 어업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조업 금지조치가 이행되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수당 지급 등으로 어업인들의 경영난 해결에 나서줘야 한다”고 밝혔다.
현실이 반영된 어선 감척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거셌다.
박원호 선주는 “연안복합어선의 경우 감척비로 1억3000만~1억5000만 원이 책정되는데, 영어자금 등의 빚을 갚고 나면 수중에 2000만~3000만 원만 남아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며 “어선을 새로 건조하려면 5억 원가량 드는데, 적어도 이 금액의 절반가량인 2억~2억5000만 원을 감척비로 지급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계장 또한 “감척사업에 참가하기 위해선 최근 1년간 조업 일수가 60일 이상이어야 하지만, 울릉도 어선들은 오징어가 없는 이유로 조업 일수가 한 달도 안 돼 감척 신청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감척 대상에 해당될 수 있도록 출어 일수를 축소해야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계장은 “정부 측에 어업인들의 생계 유지를 위한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조업을 막는 것”이라며 “오징어는 1년만 사는 단년생이고 회유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중국 어선의 조업만 금지시키면 자원이 금방 회복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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