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이하석
파도는 절지의 보각(步脚)처럼 접하지만,
게의, 수면 밖에 대한 생각의 계단일 뿐.
그러나 올라갈 수 없는 처지여서 물 아래에서 어기적거리는 게는
물 접는 파도의 소식이 마음에 걸려
늘 위를 경계해야 하는 제 주소의 지도를 숙지한다.
물 아래선 모든 생각들이 돌처럼 가라앉아 있다.
게의 삶도 그 이하여서
돌 아래서 돌 아래로 빠르게 옮아가며 모래 속에 몸을 숨긴다.
거듭 말하지만, 바람이 수면을 파도로 헤적일 때,
햇빛 어룽지는 바깥의 무늬가 돌에 새겨지면,
게는 그 무늬를 제 문신으로 새긴다.
좀 더 완벽하게 숨으려는 전략이다.
세상의 파도 밑 고요한 바닥을 어기적거리고 싶은 나도
내려갈 계단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심연을 들여다보며 가라앉는 꿈자리나 드러낼 뿐.
※ 이하석 작가는…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천둥의 뿌리>, <상응> 등. 육필시집 <부서진 활주로>. 소월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등 수상. 영남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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