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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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시를 만나다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19.10.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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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장

김진돈

펜촉 끝에 젖어 있는 파고는 땅에 바다를 폭로한다 밑줄이 없는 지류를 횡설수설하는 손바닥을 만지며 허기가 눌러 찍은 발자국이 행서체로 흥얼거린다

해안선은 혼잣말로 읽어야 하는 문장이다

팔장을 낀 채 제 젖가슴을 누르며 걷던 한 여자가 걸음을 멈춘다 다음 발자국 자리에 젖 모양의 구멍을 판다 바닷물이 한 홉쯤 고여 있는 원문을 탁본한다

해안선은 여자로 읽어야 하는 수정문이다

세 남자가 옆 사람 그림자 언저리에 기둥을 심는다 젖을 닮은 삼각뿔 움막에 불안이 고여 있다 사방으로 불안이 흘러내리는 사이, 경작의 습관이 시작된다

해안선은 채식으로 읽어야 하는 수정문이다

테트라포드에 부딪힌 파도가 네 방향을 헤매다 미끄러진다 녹슨 활자처럼 정박한 배들이 마모된 요철을 들썩거리고 눌러 쓴 흘수를 차압당한 폐선들, 뭍으로 소외되고 있다

오탈자로 가득한 해안선은 난해한 문장을 쓰고 있다

 

※ 김진돈 작가는…

경북 순창 출생. 2011년 <시와 세계>, <열린 시학> 등단. 시집 <그 섬을 만나다>, <아홉 개의 계단> 등. 경희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운제당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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