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 유통의 메멘토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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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유통의 메멘토모리
  • 안현선
  • 승인 2017.07.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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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가락시장 중도매인조합장


소비보다 공급이 넘치는 시대, 수입과 유통시장이 개방된 탓이다. WTO 체제 출범, FTA 체결로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고 경쟁은 격화되고 있다. 비수기에다 경기침체까지 겹쳐서 물량이 남아도 격감한 소비에 “아이고, 작년만 못해!”라는 유통인의 탄식이 가락시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작성한 수산물 통계를 다 뒤져도 지금처럼 공급이 소비를 압도하던 때는 없었다. 2014년 기준으로, 국내소비는 454만5000톤인데 국내생산은 330만5000톤이다. 단순히 생산량만을 쳐다본다면 이미 물가 폭등수준이래야 맞다. 이를 총 공급 5962톤에서 수출 949톤을 제하면 부족한 소비 218만9000톤(48.2%)이 수입으로 대체된 셈인데, 유통시장에서 수입품 비중이 50% 넘게 체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입돼 공급한 수산물이 226만3000톤이나 되는 통계를 접하면 시장에서 국내산 찾기가 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시장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면, 정가·수의매매 방법을 매개로 산지에서 물량을 대거 매집한 S, E, L, G, H 등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저가할인, 가격파괴 등 첨단 기법을 동원하여 수산물 유통 전반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연근해와 원양·수입산은 대형마트·장외시장이 90%를, 수집상을 거친 양식수산물은 90%가 유사시장에서 판매 실정임이 정부의 연구(수산물 유통 효율화를 위한 비용절감 방안 연구. 2010. 12월 해양수산부)로 밝혀진바 놀라움이 배가된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1990년대 초 가락시장을 중심으로 수산물을 조달한바 있는데, 밴더와 물류센터 체제로 전환한 다음 2000대 초반 본격적으로 산지에 구매담당자를 배치하고 생산어업인에게 직접 물량을 조달하는 4세대 단계로 진화했다. 이제 대형유통업체는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마지막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연근해 또는 원양 어선업의 경영참여자는 선주·자본주, 선장, 선원 등으로 구분되고 어획된 수산물을 ‘짓가림제’로 분배하는 특징이 있음)

1996년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한지 20년여, 전국 주요 유통거점에 백화점 97개소, 대형마트 537개소, 기업형슈퍼마켓(SSM) 9649개소가 성업 중이다. 이들 업체는 뉴스 중심에 서서 전국 주요도시의 구와 동단위로 확장하고, 자본의 속성만큼 점포수를 무한증식하고 있다. 영업규모도 눈부신 성장으로 2015년 결산결과 114조 원에 수산물 매출액도 약 5조 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도매시장은 여전히 변화와는 관계없는 무풍지대다. 고비용·저효율의 경매 거래를 집착하고, 앞서의 유통채널과는 경쟁에 한참 뒤진다. 정부와 도매시장 개설자는 이 같은 수산물 도매시장의 기능과 존재가 부담되는 상황, 정권마다 행사처럼 ‘유통대책’을 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대안도 없이 서로 패를 가르고, 비난하며, 얼굴을 붉히는 산·학·관·연의 전문가는 무한갈등에 빠져 있다. 현장의 유통 종사자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만을 탓하며 잠재적 범법자 신분에 머물러 있다. 

수산물의 거래상대방은 위험(Risk)을 사서 되파는 행위자이다. 확실한 이윤보장이 없는 한 시장에서 거래를 기피하는 본능이 발현된다. 수산물 중 대중선어는 다루기가 어렵고, 냄새와 부패·변질성이 강해 빙장(氷藏) 유통을 해야 한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변질을 우려한 상품보유자의 심리상태가 불안해지고, 가격이 하락하는 거래의 속성이 유통(장사)을 지배해 왔다. 오죽하면, 출하자가 산지 1차 경매가격 기준으로 소비지시장에서 가격을 보장(Risk hedge)해 주는 고정거래처를 요구하겠는가.

매일 19시부터 소매상인은 도매시장을 직접 방문해 생선을 손으로 만지고 속박이, 선도를 확인한 다음 중도매인을 대면하면 중개·도매 거래가 성립한다. 대금결제 유무 확인도 필수과정, 이때, 상품구매에 따른 위험회피행위가 또 다시 발동한다.

즉 ‘선 판매 후 결제’, 상품을 팔고도 이윤이 남지 않으면 처음 결정했던 거래단가를 낮추라고 달려든다. 거래처의 거센 요구를 묵살하면 수십 년을 공들여 다진 거래처를 잃게 되고, 밀린 외상대금도 받기 어렵게 된다. 거래고객이 2~3일 방문하지 않으면 판매대금 떼이는 걸 걱정해야 한다.

집단과 사회를 위한 특정행위가 전통과 관습이 되고, 건전하고 모범적인 전통과 관습이 발전해 법제화돼온 실증사실에 비추어도 수산물의 거래현실을 반영한 정가·수의매매의 제도화는 타당하며, 훗날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급진변화라서 반대나 시행착오가 우려되나 전자송품장을 제출하면 공정·투명성이 보완될 것이다.

개혁과 혁신을 미루고 기득권에 기대어도 도매시장은 잠시 굴러갈 것이다. 그렇지만, 고비용·저효율의 유통체제는 경쟁에서 퇴락하여 머지않아 소멸될 것이 자명한 일, 역사가 증명하듯 경제 원리를 거스르고, 시장의 힘에 맞서는 일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로마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성대한 개선행진을 할 때 바로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놓았다. 그 노예의 임무는 장군에게 계속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당신도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Hominem   te esse memento)”. 수산물 유통에서 영원불멸의 절대강자는 없다. 도매시장의 개혁과 혁신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이 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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