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회장께 드리는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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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회장께 드리는 연서
  • 남달성
  • 승인 2008.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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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李鍾九) 회장님.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라 어업인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않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이 회장에게 이런 글월을 올린다는 게 송구스럽기까지 합니다. 더욱이 기름값 폭등으로 수산업 경영이 어렵고 어촌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핍박한 상황에서 수산전문지 기자들만의 얘기를 드리는 것 같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13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수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이회장님이 답변한 내용 가운데 수산전문지에 대한 비하발언을 그냥 묵과할 수 없어 고민 끝에 편지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혹여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못됐더라도 넓은 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감사가 열린 그날 저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님이 수산전문지 6개 모두가 영세한데다 사적(私的)이고 천편일률적으로 저질기사만 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과연 이게 사실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 같은 발언이후 한 의원이 수산전문지에 대한 평가는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회장이 나중에 설명해야 할 것이란 충고를 한 것으로 미뤄 사실로 받아 들이고자 합니다. 저 자신을 말하자면 내년 12월이면 기자생활 40년이 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만 저는 대학을 나온 후 평생 이 외길을 자랑스럽게 걸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회장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이 말을 듣고 심한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직업입니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집념이 있어야 하고 남다른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으로 뛰어들고 부정과 불의를 고발하는 등 진실과 선을 추구하는 모든 형태의 도덕적 용기와 자기 수양없이는 기자로서 영원할 수 없습니다. 더하여 본질과 핵심을 파헤치는 분석력과 치밀성을 갖춰야 합니다.

때문에 기자들의 자긍심은 하늘을 찌를듯 높습니다. 시쳇말로 호주머니에 동전 5백원만 있으면 큰 소리 치는 게 기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음미해 보십시오. 이 회장께서는 이런 전문지 기자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전문지 기자가 그리 못마땅합니까. 그렇다고 해도 모두를 싸잡아 모욕을 준다면 전문지 기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문제로 강병순(姜秉淳) 수협 감사위원장이 신문사를 찾아 왔을 때 “기자 40년 동안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을 토대로 이 회장을 비판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회가 있습니다. 첫째는 밀림(密林)사회요, 둘째는 스포츠 사회요, 셋째는 심포니(交響樂)사회라고 철학자 안병욱(安秉煜) 선생은 갈파했습니다. 짐승의 사회에는 도덕도 없고 대화도 없고 예절도 없고 양보도 없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투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특히 짐승은 생긴 구조부터 폭력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예컨대 호랑이의 발톱과 사자의 투쟁력, 황소의 뿔과 독사의 혀, 독수리의 눈과 악어의 잇빨, 고슴도치의 피부를 볼 때 모두 야성(野性)과 폭력의 무기일 뿐입니다. 전문지 기자들은 그런 사회에서 살기를 원치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아직도 동물 사회의 법칙이 잔존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침략전쟁과 인종간의 잔인한 싸움이 그것입니다. 그들의 혈관속엔 자기의 사랑하는 동생을 질투 끝에 죽인 카인의 무서운 피가 맥맥히 흐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 회장의 혈관에도 이런 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까. 수산전문지 기자들은 작지만 저마다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역사와 민족 앞에 늠름한 모습으로 서서 살아가는 부류들입니다. 제발 힘없고 가진 것 없다고 해서 무시하지 마십시오. 수산전문지 기자들이 이 회장님의 폄하발언을 듣고 온존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함께 심포니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합쳐야 합니다. 심포니사회는 협동과 조화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교향악의 연주를 보십시오. 모든 악사와 악기의 소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섬세한 소리를 내고 첼로는 밤하늘 같은 은은함을 들려줍니다. 또 북은 힘찬 소리로 용기를 북돋우고 트럼펫은 씩씩한 소리를 내고 클라리넷은 흐느낍니다. 이렇듯 모든 연주자는 지휘자의 지휘봉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저마다 제 소리를 내되 딴 악기 소리를 방해하거나 침범하지 않고 전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음악이라는 뛰어난 미(美)를 창조합니다.

그것은 공생공화(共生共和)의 세계입니다. 이처럼 이간은 개성적 존재입니다. 저마다 제 노래가 있고 제 색깔이 있고 제 향기가 있고 제자리가 있고 제 갈 길이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언론은 비판기능에 가장 큰 무게중심이 있습니다. 이 문제로 어는 수산전문지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건설해야 할 가장 이상적 사회는 어떤 것입니다. 저는 심포니와 같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것이 가장 아름다운 질서요, 인간다운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회장님. 우리 다 함께 힘 모아 심포니 사회건설에 동참하지 않으시렵니까.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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