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현 장관께 드리는 연서(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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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현 장관께 드리는 연서(戀書)
  • 남달성
  • 승인 2007.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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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현(姜武賢)장관님. 지난 26일 수산직렬을 폄하한 발언에 대한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려놓은 기자의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음은 왜 일까요. 김석구(金碩九)홍보관리관이 그날 오후 5시쯤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한다’며 기자와의 짤막한 통화를 나눴음에도 불구, 못된 성정 때문에 관용을 베풀지 못해 심히 죄송스럽게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며 더 선지의 편집국장이었던 찰스 A 다나는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큰 뉴스가 된다”고 갈파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은 지금도 동서고금을 통해 언론계의 헌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기자는 그 날 간담회가 있은 후 다시 한번 강장관의 발언을 곰곰이 따져 보았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분의 계급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장관이 된다는 것은 천운(天運)을 타고나야지 아무리 고매한 인품과 출중한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런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정한 친구사이에 잠깐 틈이 생겨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해도 그것은 얼마든지 화해와 용서 관용을 베풀 수 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몹시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록 강장관께서 “소수직렬의 수산직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인사와 관련, 서두를 꺼낸 것은 듣기에 따라 애정과 연민의 정이 스며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담회가 진행된 30여분 동안 무려 3번이나 ‘소수직렬’ 운운한 것은 상당히 거북스러웠다면 잘못된 표현일까요. 또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 뒤 심호진(深好鎭) 현 차관보의 사의 표명에 따라 최장현(崔壯賢)현 해양정책본부장과 김춘선(金春善)어업자원국장을 놓고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했다“면서 ”어업자원국장을 맡을 수산직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강장관님. 그게 말이나 될법합니까. 해양수산부가 신설되던 1996년 8월 당시 인사와 예산 조직 면에서 해운항만과 수산분야가 50대 50의 비율이었지만 지난 10 여 년 동안 깡그리 수산을 죽여 놓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기자들이 “P지방청장과 B전 국제협력관이 있지 않느냐”고 상기시키자 강장관께서는 “그들은 내가 장관으로 재임하는 한 요직에 앉힐 수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을 들었을 때 기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을 음미해 보십시오.

같은 말일지라도 “그들은 아직 세련되지 못한 면이 많아 조금 시간을 두고 봐야 될 것 같다”고 분위기를 바꿨더라면 얼마나 장관님을 우러러 보겠습니까. 단도직입으로 그들의 인격을 깡그리 모독한 말을 해야만 강장관님의 직성이 풀립니까. 지금 그러잖아도 수산직렬이 무너지고 있는 판에 B씨와 같은 인재가 변방의 책임자로 일하도록 한 것은 수산을 더 죽이려는 처사이지 결코 수산을 배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배려하는 주장은 아름답습니다’는 말은 날마다 TV 매체를 통해 한국공익광고협의회가 펼치는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합니다.

같은 공직자이면서도 서러움을 받던 해운항만청 시절의 강장관을 그려보십시오. 그래도 지금은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해운이 호황을 유지하고 예산증액으로 항만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만 봐도 강장관께서는 감사한 나머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법 한데 웬지 모든 일이 거꾸로 돌아가는 같아 참으로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과 됨됨이를 마구잡이로 평가절하하는 강장관님의 인사평가기준이 과연 객관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기자의 말에 “그 말은 정정겠다”고 용기있는 양보와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까.


또 수산정책혁신기획단이 수산정책에 꼭 필요한 부서인데 강장관께서 부임한 이후 이를 폐지한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고 되물었을 땐 옹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작년 10월 수산혁신과제 39가지를 도출했지 않았느냐”고 기자들이 말하자 “그런 것은 본연의 업무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기(氣) 죽이는 말이었지 상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마음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하다면 부활시키겠다”고 언질을 주었을 때는 배려하는 마음이 작용한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평소 미소를 머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강장관께서 이날만은 유독 경색돼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산직의 경우 지금까지 조로(早老)한 면이 많았다”면서 “지금은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 것도 기자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부이사관 가운데 바로 국장으로 승진할만한 인사가 있나”고 물을 정도로 수산직렬을 과소평가한 것은 수산계를 업신여기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정말 그럴 정도로 수산직렬들이 엉터리들만 모여있는 집단들인지 기자도 미쳐 몰랐습니다.

강장관님. 이처럼 갈등이 없는 사회는 어디에서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갈등에 너무 약하고 갈등의 반응에 너누 서투릅니다. 무엇보다 갈등을 병리(病理)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갈등은 병리가 아닙니다. 정상(定常)입니다. 갈등구조라고 해서 사회마다 다 같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사회는 갈등이 그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지만 어떤 사회는 갈등이 조직의 해체요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강장관께서는 갈등구조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리시겠습니까. 좀더 '유유하게' '여유있게''침착하게' '머리를 차게해서' 대처하는 것이 어떨까 감히 기자는 말씀드립니다. 내내 건성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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