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관께 띄우는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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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관께 띄우는 연서
  • 장승범
  • 승인 2005.11.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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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四圍)가 고요와 정적으로 뒤덮인 새벽 4시. 며칠째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끝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습니다. 이번 말라카이트 그린 파동과 관련, 과연 해양수산부가 제 몫을 다했는지, 또 관련자 문책범위와 수위가 옳았는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역사의 현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기자의 도리가 아닐 듯싶어 소견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기자는 사건현장을 좇는 메신저란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오거돈(吳巨敦)장관님.
지난 9월1일 정례기자 브리핑을 통해 중국산 민물장어에서 발암의심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고 발표했을 때 기자는 국내 양식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전문지와는 달리 적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오장관께서는 국내산 민물장어는 위생에 안전하다고 재삼 강조했을 뿐 아니라 며칠 후 국내산 민물장어 시식회를 열어 정책홍보에도 한 몫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10월4일 오장관께서는 풀죽은 모습으로 “국내산 민물장어에서 위해물질이 나왔다”고 정례브리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왜 그리 서둘렀습니까. 전날 밤 관계관 회의에서 전격적으로 발표를 결정한 것이 이 시점에서 보듯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오리라는 사실을 예측도 못했단 말입니까. 정책홍보는 국민들에 대한 이해와 친선 지지와 협력을 도모하는 설득작업입니다. 따라서 홍보내용에는 신뢰성과 공공성 진실성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장관께서 발표한 내용이 진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국민들의 분노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불신의 벽이 그만큼 높아진 것입니다.

또 직접 피해를 보고 있는 생산자와 유통업자, 횟집업주들은 당장 끼니를 거르게 됐다며 연일 해양수산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심지어는 오 장관을 상징하는 허수아비에 대한 화형식까지 치렀다니 가슴이 떨립니다. 발표 시기 선정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발표내용과 사후대책 마련도 없이 덜렁 참모들의 말만 듣고 실행에 나선 것은 어떤 이유로든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봅니다. 과연 그들이 장관을 성심껏 보필한 것인지 적이 걱정됩니다. 특히 문책대상자 가운데 홍보관리관이 경고처분을 받은 것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징계 양정(量定)면에서 본다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홍보관리관을 보호(?)해 주어야 할 40여 해양수산부 등록기자가 볼 땐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수산과학원장에 대한 사표수리가 합리적이었는지를 생각할 때 많은 인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습니다. 말라카이트 그린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홈페이지에서 이의 사용을 권장했다거나 산하연구원이 대어업인 교육지침서를 썼다는 이유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정책홍보판단의 잘못과 홍보내용 및 사후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서둘러 발표한 책임은 수산과학원장의 그것과 비교할 때 몇 배 무겁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원칙과 기준을 배제하고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을 땐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8월 KBS1TV가 1백4회를 끝으로 종영한 ‘불멸의 이순신(李舜臣)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는 임진왜란이 터진지 불과 21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자 군사들이 동요를 일으켰고 그중 달아난 여도 수군 황옥천(황옥천)을 붙잡아 목을 베어 높은 곳에 효시(梟示)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그는 분명 군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오장관님.
1943년 미국 하버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토마스 쿤은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패러다임이란 새로운 개념을 창안한 철학자입니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과 법칙, 지식과 사회적 믿음 그리고 관습 등을 통털어 일컫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대환경과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라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인사행정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사관리가 최근 들어 인적자원관리라는 용어로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직원을 조직의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 것입니다.

따라서 직원들의 전문성과 역량강화를 위해 적절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전략상의 변화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문책을 볼 때 수산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감안할 때 오장관께서 정말 수산공직자를 아끼려는 애정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00여년 동안 오로지 공직자의 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모두를 내건 오장관께서 혹여 실책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진실을 깔아뭉개고 조직내 세력자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면 이는 분명 배격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카가 1만8천여 대군을 이끌고 부산에 첫 발을 내려 북으로 전진했을 때 조정은 이양원(李陽元)에게 서울 도성을 막게 하고 김영원(金命元)장군에게 7천여 군사를 주어 한강방어선을 구축하도록 한 것은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조선군이 조총사격에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도성은 순식간에 왜군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피란길에 오른 선조(宣祖)를 호위하는 종친과 문무관이 1백 명도 채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 뿐입니까. 선조실록을 보면 이순신장군한테 두 번에 걸쳐 출동을 독촉하던 좌부승지 민준(민준)도 혼란한 틈을 타 도망쳤습니다.

또 왕이 탄 수레가 평양에 도착하자 대사성 임국로(林國老)는 어머니가 병환이 났다는 이유로 자취를 감추었고 판서 한준(韓準)은 낙상한 것을 핑계삼아 양덕으로 도망가 “왕의 수레가 이미 요동으로 건너갔으니 나라구하기는 틀렸다”고 공공연히 소문을 내기도 했지 않습니까. 지금 수산계는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여 있습니다. 밖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체결에 대비, 혼신의 힘을 쏟고 안으로는 자원고갈과 어장환경악화 등으로 전래의 영화(榮華)를 되찾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또 국제유가는 하루 하루 기복을 달라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수산전문인력이 부족한 터에 이번과 같은 사태가 터졌으니 혹자들은 “이젠 수산은 갔다”고 그침 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자뿐일까요. 힘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해양수산부가 발족할 당시 수산예산은 7천9백30억원이었고 해운항만청의 그것은 6천9백11억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에 상정된 내년 예산을 보면 수산예산은 그때보다 겨우 3백80억원 늘어났지만 해운항만예산은 무려 1조1천억 원 가까지 불어났습니다. 조직과 인사도 쪼그라 들만큼 쪼그라 들었습니다. 오장관님. 제발 수산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힘을 모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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